한반도의 첫 경양식 식당으로 불리는 '서울역 그릴'이 영업을 종료한 지난해 11월30일 매장 앞 풍경.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한반도의 첫 경양식 식당으로 불리는 '서울역 그릴'이 영업을 종료한 지난해 11월30일 매장 앞 풍경.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 지난해 11월30일 서울역 건물 4층 ‘서울역 그릴’. 마지막 영업일을 맞아 운영 메뉴를 4개로 줄였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경양식집으로 불린 식당을 늦지 않게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줄줄이 매장을 찾았다. 가족들과 종종 방문했다는 60대 여성 정모 씨는 "오랜 시간 기차여행 갈 때마다 찾았던 '추억의 맛'"이라며 "더이상 맛보지 못한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첫 경양식 식당으로 불리는 '서울역 그릴'이 영업을 종료한 지난해 11월30일 매장 앞 풍경.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한반도의 첫 경양식 식당으로 불리는 '서울역 그릴'이 영업을 종료한 지난해 11월30일 매장 앞 풍경. 사진=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1925년 경성역 2층에서 개업해 우리나라 최초의 경양식집으로 불리는 ‘서울역 그릴’이 지난해 11월 문을 닫았다. 2년에 걸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추억의 맛집들이 줄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서울역 그릴은 그동안 여러번 자리를 옮겨가며 다른 주인과 함께 문을 열었으나 이번에는 재개장을 기약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직원은 "서울역 식당가 리모델링때문에 휴점한 후 주인이 바뀌어 재개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역 그릴이 있는 식당가를 관리하는 한화역사 관계자는 "서울역 그릴을 포함해 해당 구역 음식점들과의 계약이 11월 말까지였다. 코로나19 이후 나가는 업체와 공실이 많아졌고, 재입점이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비단 서울역 그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노포'들이 코로나 삭풍에 줄줄이 문을 닫았다. 서대문경찰서 인근에서 1963년부터 운영한 '서대문 원조 숯불 돼지갈비 통술집'은 지난달 폐업했다. 2년간 적자가 이어진 끝에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서울 필운동 고급 한정식집 '예조'가 폐업한 것도 화제였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를 단골로 뒀던 고급 한정식집이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김영란법) 이후 수요가 준 데다 코로나가 결정타였다.
사진=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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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대학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확산하면서 대학가에서 수많은 학생이 거쳐간 식당들도 휴업과 폐업에 들어갔다.

성균관대 학생들에게 30년 넘게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던 '제일미가'가 지난해 폐업했다. 연대와 이대 상권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대역 인근에서 1975년 문을 연 '가미분식'도 지난해 여름께부터 임시 휴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가하면 다른 이유로 만나볼 수 없게 된 맛집도 있다. 지난해 11월 현대백화점과 아울렛 점포에서 17개 직영점을 운영하던 밀탑은 매장을 모두 철수했다. 잦은 경영권 손바뀜과 경영 악화 끝에 결국 철수 수순을 밟았다. 전성기 팥빙수로 연 매출 120억원을 기록하고 매해 여름마다 긴 줄을 세웠던 밀탑이지만 이름난 밀크빙수는 한동안 맛보기 어렵게 됐다. 2010년대 중반부터 경영권이 잇따라 바뀌며 무리한 확장과 자금 운용 끝에 직영점을 철수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밀탑 대표 매장으로 꼽히던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매장 자리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의 새 점포가 들어섰다. 1945년 광복 후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과점 ‘미도리야’를 창업주 신창근씨가 인수해 연 태극당은 3대째 가족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외식업계의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바이러스 오미크론으로 재확산한 코로나 사태가 하루빨리 잦아들기만 바랄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