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와 경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스케치. 연초 이후 뉴욕증시가 널뛰기 장세를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스케치. 연초 이후 뉴욕증시가 널뛰기 장세를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또 다른 10년, 2020년대를 맞아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만큼 2022년 임인년에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세계경제는 코로나19 외 또 다른 테일 리스크(tail risk)가 발생하면서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을 중심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통계학에서 자연·사회·정치·경제 현상은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하지만 발생률이 적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도가 정규 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두꺼워질 경우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세계 곳곳에서 테일 리스크 발생

테일 리스크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이 세계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다. ‘R(경기침체)’ 공포를 넘어 ‘D(디플레)’ 공포가 빠르게 확산된다는 의미다. 세계경제는 현재 인플레와 금리가 올라가지만 궁극적으로 성장률과 함께 마이너스 국면에 빠지는 ‘3M(triple minus)’ 시대가 닥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3차 대전에 대한 우려는 전형적인 롱테일 리스크에 해당한다. 미‧중 간 경제 패권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각국의 보호주의와 이기주의, 극우주의 세력 득세, 중남미 지역의 핑크 타이드 물결 등으로 지금의 상황이 2차 대전 직전과 흡사하다고, 영국의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경고했다.

미국 경제의 팻 테일 리스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탄핵과 제2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재탄생될 것인가 여부다. 지난 1월 20일부로 취임 1주년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도를 좀처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강경 공화당 의원을 중심으로 탄핵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옥터버 서프라이즈’ 같은 국민의 지지도를 끌어올릴 극적인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바이든 국가와 트럼프 국가로 양분돼 제2의 의회점령 사태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과연 어디서 옥터버 서프라이즈를 만들어낼 것인지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일본 경제는 정책 함정, 유동성 함정, 구조조정 함정, 불확실성 함정, 좀비 함정 등 고질병인 5대 함정에 다시금 빠져들고 있다. 일본 총리가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 국민 사이에 ‘지브리의 저주’에 빠질지 모른다는 새로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브리의 저주란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면 증시 등 금융시장이 난기류를 보이는 현상이다. 지브리 저주는 금융 변수 중 엔‧달러 환율 움직임과 상관관계가 높다. 일본 총리를 교체해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일본 금융시장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 경제의 테일 리스크는 ‘선행의 역설(kind act's paradox)’이다. 선행의 역설이란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이 도리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기부할 때 기부의 순수성을 생각하지 않고 출세 등 다른 측면을 생각하는 것을 전형적 선행의 역설로 볼 수 있다.

2010년 이후 발생한 유럽 재정위기 극복의 핵심 역할을 담당한 독일 경제가 그 후유증으로 2019년 2분기부터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할 정도로 성장의 동력이 약화됐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마저 떠났다. 독일이 맹주 역할을 못하면 유로랜드 중 비우량 회원국에 속하는 경제뿐 아니라 유럽 통합에도 악역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테일 리스크는 ‘제3차 천안문 사태’ 발생 가능성이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협상, 홍콩 시위대 사태 등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조병인 3대 회색 코뿔소(그림자 금융, 과다 부채, 부동산 거품) 현안도 제때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작년 4분기에는 성장률이 4%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제3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기반’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1976년 1차 천안문 사태 이후 덩샤오핑 실각, 1989년 2차 천안문 사태 이후 자오쯔양에서 장쩌민으로 권력이 이양됐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의 부패 척결 과정에서 밀려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시진핑 퇴출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한국 경제와 관련한 각종 위기설도 판치고 있다. 경기적 측면에서는 미‧중 간 샌드위치 위기론, 가계부채 위기설, 국가 부도설 등이 나도는 가운데 자산시장 측면에서는 주가 폭락설, 강남 집값 급락설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다른 한편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냐를 놓고 벌이는 논쟁과는 대조적이다.

요인 분석(factor analysis)을 통해 최근 위기설의 실체를 규명해보면, 대부분 ‘자신감’과 ‘프로보노 퍼블릭코 정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오히려 뉴욕 증시에서는 외국인 가운데 서학개미의 움직임과 올해 CES 전시회에서 한국 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경제 10대국’이라는 자부심과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심만 있으면 각종 위기설은 상당 부문 해소될 수 있다.
쏟아지는 ‘테일 리스크’…ESG 경영이 답
‘위기(crisis)’와 ‘위험(risk)’을 혼돈하지 않아야 한다. 최근 위기설은 대부분 리스크 성격이 짙다. 초불확실성 증강현실 시대에 리스크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리스크가 있기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경제정책, 기업 차원에서 경영계획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재테크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리스크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덕적 해이 봉쇄하는 조치 필요해

종전의 이론이 잘 들어맞지 않는 뉴노멀 시대에는 리스크를 파악할 때 전문가에게 너무 의존하는 ‘마이클 피시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마이클 피시는 1987년 한 어부가 200년 만에 불어닥친 초대형 허리케인 제보를 무시해 영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안긴, 당시 유명한 BBC 방송의 기상 전문가다. 열린 지식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이클 피시 현상을 낳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예측하거나 리스크를 파악할 때 흔히 범하는 심리적 편향에 따른 함정, 고정관념의 함정, 자기 과신의 함정, 기억력의 함정, 신중함의 함정, 증거 확인의 함정 그리고 트렌드 분석에 따른 함정 등 이른바 ‘루비니-파버의 7대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사전에 파악해놓은 리스크도 관리가 가능하느냐에 따라 ‘행태 리스크’와 ‘통제 리스크’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관리 불가능한 행태 리스크마저 내부적으로 감당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설령 비용이 들더라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 간 외교관계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리스크를 관리할 때는 ‘사전적 대책’이 중요하다. 주로 사후적 대책에 해당하는 리스크 관리 실패로 위기가 발생하면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전적 리스크 관리 대책으로 각광받으며 ‘텍스트 마이닝 기법’이나 리스크가 위기로 전염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처럼 시스템이나 규범이 잘 작동하지 않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리스크 관리자에 대한 ‘정직성’과 ‘신뢰’가 요구된다. 연초부터 증시를 흔들어놓은 대형 금융사고가 대표적 예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또 다른 위기의 원천인 도덕적 해이를 봉쇄하기 위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