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2050’을 선언한 대형 정유사들이 신규 유전 발굴을 위한 ‘은밀한 탐사’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한 데다 적어도 수년간은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해서다. 정유업계는 오래된 유전의 채산성이 악화한 탓에 신규 유전 발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유사 "탄소중립" 외치더니 작년에도 유전 800곳 뚫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매켄지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탐사와 채산성 평가를 위해 시추된 유정 수가 798개로 전년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유정 시추 사업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만 해도 정유업계의 유전 탐사 활동은 줄어드는 추세였다. 코로나19발 경기 둔화 우려에 국제 유가가 폭락하자 정유업체들이 유전 탐사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회복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북해산 브렌트유는 최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수익성이 높아지자 정유업체들이 새로운 유전 발굴에 다시 눈을 뜬 것이다. FT는 “원유 소비는 최소 5년 정도 증가할 것”이라며 “정유업체들도 강력한 원유 수요를 예상하면서 탐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이미 승인된 곳 외에서 새로운 유전이나 가스전을 개발해선 안 된다. 하지만 쉘은 지난달 카타르페트롤리엄과 제휴를 맺고 아프리카 서남단에 있는 나미비아에서 처음으로 유정을 시추했다. 같은 달 이탈리아 최대 석유업체 에니도 케냐 앞 해저에서 8년 만에 유정을 시추했다.

이들은 셰브런 엑슨모빌 등 5개 대형 정유사와 함께 2050년까지 실질적 탄소 배출량을 제로(0)화하는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기업이다. 앤드루 래텀 우드매켄지 부사장은 “대형 정유사들은 여전히 유전 탐사 활동을 하고 있다”며 “예전보다 훨씬 조용히 진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정유업체는 노후화된 유전은 채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위해선 신규 유전 발굴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신규 유전이 오히려 탄소 감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펼친다. 오래된 유정에서 원유를 추출할 때 탄소 배출이 더 많다는 얘기다.

대형 정유사들은 천연가스전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천연가스가 원유 수요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서다. FT는 “이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에니는 이집트에서 신규 탐사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등 원유와 천연가스가 모두 매장된 지역에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