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대, 32년 된 톈안먼 민주화시위 슬로건도 지워버려
홍콩의 대학들이 6·4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추모하는 상징물들을 잇달아 철거한 가운데, 홍콩대가 32년 된 추모 슬로건도 지워버렸다.

30일 홍콩프리프레스(HKFP) 등에 따르면 전날 홍콩대는 기숙사 옆 도로에 페인트로 쓰여 있던 '잔인한 학살에도 순교자들의 영혼은 영원히 머물 것이며, 민주주의의 불꽃은 악의 종말을 위해 영원히 빛날 것'이라는 뜻의 스무 글자를 지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홍콩대 학생들은 1989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가 벌어진 직후 기숙사 옆 도로에 해당 슬로건을 흰색 페인트로 썼으며 이후 매년 새롭게 페인트를 덧칠하며 슬로건을 유지해왔다.

HKFP는 "홍콩대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에 들어간 때에 사전 고지 없이 대낮에 슬로건 지우기 작업을 진행했다"며 "해당 슬로건은 홍콩대에 남아있던 마지막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상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홍콩대 대변인은 "홍콩대는 다양한 시설과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유지·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해당 장소에 대한 작업도 그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앞서 홍콩대는 지난달 22일 밤 톈안먼 민주화시위 기념 조각상 '수치의 기둥'을 기습 철거했다.

이틀 후 홍콩중문대는 '민주주의 여신상'을 철거했고, 홍콩 링난대는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추모하는 대형 부조(浮彫, relief) 벽화를 떼어냈다.

중국과 달리 홍콩에서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아래 30여년 간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행사가 진행돼왔다.

그러나 2020년 6월 30일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의 상황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톈안먼 추모행사를 주최해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가 홍콩 당국과 친중 진영의 압박 속에서 지난해 9월 자진 해산했고, 당국은 지련회가 수집한 시위 관련 자료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지련회의 간부들을 불법집회 관련 혐의로 잡아들였다.

이어 대학들이 관련 추모 상징물을 철거하면서 이제 홍콩에서도 톈안먼 민주화시위의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