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임금체불·산재 사건 고소 대리 못해"..업계 발칵
공인노무사가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해 의뢰인의 형사 고소·고발 서류를 대신 작성하거나 법률 상담을 해주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등 수사와 관련해서 법률 상담을 하거나 의견서를 작성해 주는 것도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도 같은 날 나왔다. 이에 따르면 기존 노무사들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노동관계법 사건의 고소·고발 대리나 상담 업무가 불가능해진다. 형사 고소고발은 노동 사건 해결 과정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던 업무인만큼 노무사들의 직역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노무사, 임금체불 등 사건에서 고소·고발 대리 못해"

대법원 제3부(주심 노정희)는 지난달 13일 변호사법위반으로 기소된 노무사 A에 대한 상고심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A는 노무법인 대표 노무사로 소속 노무사들과 2008년5월부터 2009년4월까지 의뢰인(근로자)들에게 체불 임금 등에 대해 법률상담을 한 후 회사 대표를 상대로 근로기준법 위반을 이유로 한 고소장을 작성해 서울지방노동청 등에 제출했다. 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으로 고소 당한 회사 대표 명의로 답변서를 작성해 이를 서울지방노동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착수금이나 성공보수금을 지급 받은 A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1, 2심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 원심 재판부는 "공인노무사법에 따르면 ‘노동 관계 법령에 따라 관계 기관에 하는 신고나 권리 구제 등의 대행 또는 대리’는 공인노무사의 직무 범위에 포함된다"며 "노무사가 이와 관련한 법률상담을 하거나 문서를 작성한 것도 업무 범위 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고소·고발은 범인에 대한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가 포함됐으므로, '노동 관계 법령'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사법경찰직무법 등에 근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고소·고발은 공인노무사법에서 노무사의 업무범위로 정한 단순 신고와는 다르게 형사소송법에 근거하므로 노무사의 업무범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어 "노조법 위반으로 고소당한 사업주가 수사 절차에서 근로감독관에게 답변서를 제출하는 행위 역시 공인노무사가 대행하거나 대리할 수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건을 파기하고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노무사, 산업안전·중대재해법 사건도 맡기 어려워지나

한편 같은 날 대법원 제3부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A에 대한 공판에서 A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한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 근로자사망 등의 사건을 의뢰받고 산업안전보건법 의견서를 작성하거나 '참고인 진술조서 예상문답, 산안법 형사사건처리절차, 피의자별 적용 법령' 등의 문서를 작성하고 법률 상담을 해준 대가로 2억2000여만원을 수수했다.

A는 이 과정에서 사건 담당 검사 및 변호사 프로필을 기초로 담당 검사와 특정 변호사의 관계에 대해 상담을 해주거나 특별사법경찰관(근로감독관) 작성 수사 결과 보고서, 피의자 신문조서, 노동청 참고인 진술서 등을 기초로 수사 진행 과정을 알아내 의뢰인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또 수사과정에서 진술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상담도 진행했다. 이에 변호사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당한 것이다.

이에 대해 1심과 원심 서울중앙지법은 "공인노무사법은 노동 관계 법령에 따른 서류 작성과 확인, 상담지도는 공인노무사가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관계 법령에 해당하므로 산안법 위반 여부가 문제되는 건설현장 사망 사고 등 산재 관련 업무를 처리하면서 법률상담을 하고 관련 문서를 작성한 것은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원심을 뒤집고 A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해 근로감독관이 그 발생 원인이나 근로자를 조사하는 것은 산안법과 근로기준법에 따른 절차"라면서도 "다만 특별사법경찰관으로서 산안법 및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수사'를 하는 절차는 형사소송법이나 사법경찰직무법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무사가 노동 관계 법령을 넘어 수사 절차에 적용되는 형사소송법 상담까지 하는 것은 공인노무사법에서 정한 직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날 이런 판결이 연달아 나오면서 공인노무사의 업무 범위가 크게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앞으로 노무사들은 임금체불 사건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을 수임하게 되더라도 고소·고발을 위한 서류를 작성해주거나 법률 상담을 해주는 것이 어려워 진다. 또 사업주가 산업 재해 등으로 인해 고소·고발을 당한 경우에도 이에 대해 상담하거나 컨설팅을 해주는 것도 불가능해 진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피고처럼 건설사 등 대기업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이나 노동청에 접수된 사업주에 대한 고소·고발에 대한 대응 업무를 하는 노무사들의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보인다. 산안법 위반 사건 등은 주로 형사 처벌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노무사에게 이에 대한 대응도 원스톱 서비스로 맡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임금 체불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등에서는 형사고소·고발을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중요한 압박 수단"이라며 "이 업무에 대해서만 따로 변호사를 찾아가라고 하면 애초에 노무사를 찾아갈 이유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형사 처벌과 밀접하게 연관된만큼, 이번 판결로 노무사들이 중대재해를 둘러싼 컨설팅이나 의견서 작성 등이 어려워지는 등 해당 분야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노무사회 관계자는 "고용노동부도 중대재해법을 노무사의 업무 영역으로 삼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인데 미묘한 시기에 대법원 판결이 나나와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도 2024년부터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데, 이번 판결로 영세사업장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노무사들이 중대재해법 업무에서 배제되면 중소기업의 산업안전 관련 대응 체계 구축은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나 산재 사건에서는 사용주에 대한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근로자나 사업주를 대리해 노동 관계법 위반에 대해 상담을 해주고, 그 이후 고소·고발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까지 설명해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형사 절차부터는 상담해 줄 수 없다고 한다면 과연 노무사를 찾아오겠나"라고 말했다.

노무사회도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노무사회 관계자는 "1심과 2심에서 무죄가 나왔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7년만에 나온 판결의 결론이 이럴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며 "노동 관련 사건에서 노무사 만큼 전문성 있는 직역사는 없는데 유죄 취지로 나온 것은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인만큼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입법적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서는 한국세무사회 등 변호사와 업역 갈등이 있는 단체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인노무사회 관계자는 "한국세무사회도 이번 판결을 '변호사 만능주의 판결'로 간주하고 큰 관심을 보이며 노무사회에 공동 대응을 요청해 왔다"며 "변호사의 직역 침해에 대응하는 전문자격사 단체 협의회의 안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협의회는 대한변리사회, 한국관세사회, 한국세무사회, 감정평가사,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한국공인노무사회가 변호사, 행정사의 업역 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곽용희/최진석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