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엄마가 맡아줄게" 그만…주식보다 더 좋은 방법 있다 [하수정의 돈(Money)텔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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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지상파 방송의 한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는 11살 초등학생이 5살 조카의 손을 잡고 세뱃돈으로 '문방구 쇼핑'에 나섰다. 5살 아이가 동네 문구점에서 보이는 대로 마구 집은 물건들은 6만원을 훌쩍 넘겼다.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중학생인 유튜버가 세뱃돈을 탕진하는 브이로그를 올렸다. 화장품숍 털이, 의류 쇼핑, 먹방을 하고 나니 "잔액은 0원"이라고 부르짖으며 하루를 마쳤다.
# '세뱃돈 플렉스(Flex)', '명절 스트레스 날리는 쇼핑', '세뱃돈 탕진잼(돈을 다 써서 없애는 재미)'.. 등등 설 대목을 잡으려는 유통업체들의 행사 광고가 여러 매체에 요란하게 걸린다.
설 연휴만 되면 세뱃돈을 쓰거나 혹은 써버리기를 유도하는 컨텐츠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매년 설 명절때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세뱃돈을 받는 아이들은 어떤 경제관념을 갖게 될까.
한은은 지난 17일부터 28일까지 10영업일간 시중은행들의 요청에 따라 총 5조1533억원을 풀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 4449억원(9.4%) 늘어난 수치다. 매년 5조~6조원 규모의 자금이 이 시기에 풀린다.
한은이 은행에 공급한 자금은 대부분 은행에서 단기간 내 현금으로 인출된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려는 아들·딸, 조카 세뱃돈 주려는 이모, 직원들의 설 상여금을 챙겨주려는 사장 등등 각자 사연은 달라도 전국 각지 은행에서 설 명절을 앞두고 뽑아가는 현금은 열흘간 5조원에 달한다.
기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설을 대목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전국 870만명의 미성년자들에게도 세뱃돈을 수금(?)할 수 있는 설 명절은 그야말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설'이라는 말은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근신(謹愼)한다의 옛말인 '섦다'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고달픈 삶을 살아왔던 옛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근신하며 조심히 한 해를 보내라는 의미를 담아 세뱃돈을 줬다는 것이다.
요즘 설의 의미와 세뱃돈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가정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저 덕담과 돈을 주며 "갖고 싶었던 거 사", "세뱃돈으로 뭐 살거야?", "맛있는 거 사 먹어" 등의 말을 건넨다.
설날 대부분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 평범한 장면에는 아이들의 경제관을 망칠 수 있는 어른들의 치명적인 실수가 숨어있다. 무심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돈의 목적을 지정해주고 '돈=소비' 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경제관념을 망치는 흔한 실수가 또 있다. 부모가 자기 지갑에 자녀가 받은 세뱃돈을 챙기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돈을 맡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가 어떻게 하면 돈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돈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저금통이다. 이른바 '돈에 꼬리표 붙이기'다. 처음부터 돈의 용도를 나누어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소비는 먹고 사고 놀기 위한 돈을 담는다. 저축은 오랫동안 차곡차곡 모아야할 돈이다. 투자는 두가지 개념으로 활용된다. 하나는 본인을 성장시킬 수 있는 체험에 투자하는 돈이다. 또 하나는 말 그대로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부는 선행을 위해 떼어둔다.
저금통이 유행하던 당시 미국에선 전문가들이 자녀 용돈 관리를 위해 소비, 저축, 투자, 기부의 비율을 3 : 3 : 3 : 1 정도로 추천하기도 했다. 다만, 돈을 얼마나 나누어 넣고 어떤 꼬리표를 붙일지를 결정할 때는 아이의 의지를 전적으로 존중해줘야 한다. 아이들에게 세뱃돈은 목돈이다. 목돈 들어온 김에 아이들과 이 같이 돈 관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만 하다.
온 마이클 노턴(Michael Norton) 교수의 TED 강의를 들어 볼 것을 추천한다. ‘돈으로 행복을 사는 법(How to buy happiness)'이란 강의에서 노턴 교수는 “행복의 크기는 돈을 얼마나 버는가보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 강의에 따르면 '동생네 연봉이 얼마나 올랐는지, 형님네 집 값이 몇 년새 두 배가 됐는지, 친구가 코인으로 몇 백퍼센트 수익을 올렸는지' 따위로 설 연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보다 '돈을 어떻게 쓰는지'가 행복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노턴 교수가 세계 각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물건을 구매하는 데 돈을 썼을 때보다 무엇인가 경험을 하는 데 돈을 썼을 때 행복감이 더 컸다. 새 옷과 스마트폰을 살 때보다 여행을 가고 드럼을 배울 때 느끼는 행복이 더 크다는 얘기다. 그는 경험에 대한 소비를 일종의 '투자(invest)'로 분류했다.
또 노턴 교수는 자신에게 돈을 쓸 때보다 남을 위해 돈을 쓸 때 행복감이 더 크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으로부터 5달러를 받아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사서 본인이 마신 사람보다 남에게 커피를 사 준 사람이 더 큰 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donate)로 인한 행복감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다.
우린 온통 ‘얼마’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어떻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어른들의 '얼마짜리'에대한 관심은 결국 청년들에게 옮겨붙어 'Flex'라는 과시형 소비 문화로 퍼져가고 있다.
"사라, 써라, 사먹어라" 같은 말은 이제 그만 하자. 아이들이 스스로 돈의 목적을 정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자녀들과 지혜롭게 돈 관리하는 법, 행복하게 돈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중학생인 유튜버가 세뱃돈을 탕진하는 브이로그를 올렸다. 화장품숍 털이, 의류 쇼핑, 먹방을 하고 나니 "잔액은 0원"이라고 부르짖으며 하루를 마쳤다.
# '세뱃돈 플렉스(Flex)', '명절 스트레스 날리는 쇼핑', '세뱃돈 탕진잼(돈을 다 써서 없애는 재미)'.. 등등 설 대목을 잡으려는 유통업체들의 행사 광고가 여러 매체에 요란하게 걸린다.
설 연휴만 되면 세뱃돈을 쓰거나 혹은 써버리기를 유도하는 컨텐츠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매년 설 명절때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세뱃돈을 받는 아이들은 어떤 경제관념을 갖게 될까.
올해 설 앞두고 5.1조원 풀려
'설 대목' 이란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시중에 화폐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시기가 바로 설 연휴 직전이다.한은은 지난 17일부터 28일까지 10영업일간 시중은행들의 요청에 따라 총 5조1533억원을 풀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 4449억원(9.4%) 늘어난 수치다. 매년 5조~6조원 규모의 자금이 이 시기에 풀린다.
한은이 은행에 공급한 자금은 대부분 은행에서 단기간 내 현금으로 인출된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려는 아들·딸, 조카 세뱃돈 주려는 이모, 직원들의 설 상여금을 챙겨주려는 사장 등등 각자 사연은 달라도 전국 각지 은행에서 설 명절을 앞두고 뽑아가는 현금은 열흘간 5조원에 달한다.
기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설을 대목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전국 870만명의 미성년자들에게도 세뱃돈을 수금(?)할 수 있는 설 명절은 그야말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의 실수
세뱃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세배를 받은 답례로 주는 돈이다. 과거에는 세배의 답례로 떡이나 과일을 주었다고 한다. 돈을 줬다는 기록은 1925년 조선 말기 최영년의 시집에서 처음 나왔다. 문헌상으로만 보면 세뱃돈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설'이라는 말은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근신(謹愼)한다의 옛말인 '섦다'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고달픈 삶을 살아왔던 옛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근신하며 조심히 한 해를 보내라는 의미를 담아 세뱃돈을 줬다는 것이다.
요즘 설의 의미와 세뱃돈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가정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저 덕담과 돈을 주며 "갖고 싶었던 거 사", "세뱃돈으로 뭐 살거야?", "맛있는 거 사 먹어" 등의 말을 건넨다.
설날 대부분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 평범한 장면에는 아이들의 경제관을 망칠 수 있는 어른들의 치명적인 실수가 숨어있다. 무심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돈의 목적을 지정해주고 '돈=소비' 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경제관념을 망치는 흔한 실수가 또 있다. 부모가 자기 지갑에 자녀가 받은 세뱃돈을 챙기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돈을 맡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가 어떻게 하면 돈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네 가지 돈의 쓸모
미국에서 10여 년 전 대유행했던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Money Savvy Piggy Bank'라고 불려진 이 돼지저금통은 저금통 한 개에 소비(spend), 저축(save), 투자(invest), 기부(donate)의 용도대로 저금할 수 있도록 칸이 나뉘어 있다.아이들에게 돈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저금통이다. 이른바 '돈에 꼬리표 붙이기'다. 처음부터 돈의 용도를 나누어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소비는 먹고 사고 놀기 위한 돈을 담는다. 저축은 오랫동안 차곡차곡 모아야할 돈이다. 투자는 두가지 개념으로 활용된다. 하나는 본인을 성장시킬 수 있는 체험에 투자하는 돈이다. 또 하나는 말 그대로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부는 선행을 위해 떼어둔다.
저금통이 유행하던 당시 미국에선 전문가들이 자녀 용돈 관리를 위해 소비, 저축, 투자, 기부의 비율을 3 : 3 : 3 : 1 정도로 추천하기도 했다. 다만, 돈을 얼마나 나누어 넣고 어떤 꼬리표를 붙일지를 결정할 때는 아이의 의지를 전적으로 존중해줘야 한다. 아이들에게 세뱃돈은 목돈이다. 목돈 들어온 김에 아이들과 이 같이 돈 관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만 하다.
행복하게 돈 쓰는 법
자녀와 이야기 하기 전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소비와 행복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해온 마이클 노턴(Michael Norton) 교수의 TED 강의를 들어 볼 것을 추천한다. ‘돈으로 행복을 사는 법(How to buy happiness)'이란 강의에서 노턴 교수는 “행복의 크기는 돈을 얼마나 버는가보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 강의에 따르면 '동생네 연봉이 얼마나 올랐는지, 형님네 집 값이 몇 년새 두 배가 됐는지, 친구가 코인으로 몇 백퍼센트 수익을 올렸는지' 따위로 설 연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보다 '돈을 어떻게 쓰는지'가 행복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노턴 교수가 세계 각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물건을 구매하는 데 돈을 썼을 때보다 무엇인가 경험을 하는 데 돈을 썼을 때 행복감이 더 컸다. 새 옷과 스마트폰을 살 때보다 여행을 가고 드럼을 배울 때 느끼는 행복이 더 크다는 얘기다. 그는 경험에 대한 소비를 일종의 '투자(invest)'로 분류했다.
또 노턴 교수는 자신에게 돈을 쓸 때보다 남을 위해 돈을 쓸 때 행복감이 더 크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으로부터 5달러를 받아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사서 본인이 마신 사람보다 남에게 커피를 사 준 사람이 더 큰 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donate)로 인한 행복감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다.
우린 온통 ‘얼마’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어떻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어른들의 '얼마짜리'에대한 관심은 결국 청년들에게 옮겨붙어 'Flex'라는 과시형 소비 문화로 퍼져가고 있다.
"사라, 써라, 사먹어라" 같은 말은 이제 그만 하자. 아이들이 스스로 돈의 목적을 정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자녀들과 지혜롭게 돈 관리하는 법, 행복하게 돈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