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현의 디자인 싱킹] 디자이너에 대한 정당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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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암 투병 끝에 4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젊은 혁신가의 죽음은 디자인계를 넘어 전 세계에 큰 슬픔을 안겼다. 그런데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초 우리나라에서 한 디자이너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당일에는 디자인 원로의 안타까운 작고 소식을 접했다. 죽음을 부르는 디자이너의 성향과 처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디자이너는 자기만족을 목표하는 예술가와 달리 고객과 사용자의 만족을 위해 일한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고객의 불평·불만을 수용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같은 성향이 고객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억울한 일이 닥쳤을 때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그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디자이너가 수두룩하다. 또 디자이너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제안이 ‘최선’임을 외롭게 주장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설득에 실패해 제안이 거부당하더라도 박탈감을 홀로 감내해야 한다.
디자이너에 대한 처우는 아직 열악한 수준이다. 국회에서 디자이너 과로 자살 진상 조사 결과 발표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토론회를 연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듯하다. 직장 상사는 퇴근 30분 전에 디자이너에게 업무를 맡기며 “간단한 건데 내일 아침까지 줄 수 있지?”라고 말한다. 인테리어에는 수천만, 수억원을 쓰면서 기업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담는 로고 디자인은 “밥 한 끼”로 대신하려는 무례한 사람도 있다. 자신의 감식안을 과신한 나머지 디자이너의 선택을 제멋대로 망가뜨려 버리는 비전문가가 수두룩한가 하면, 비상식적일 정도로 많은 수정을 요구하고선 “미안, 처음 시안이 더 낫네”라며 허무한 말을 던지는 클라이언트도 많다.
인식 개선과 더불어 제도적 해결책도 필요하다. 디자인계는 산업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데 비해 사업장 수는 2018년 6500곳에서 매년 1000곳씩 꾸준히 늘어 현재 디자인 전문 기업이 1만 개에 육박하는 과포화 상태다. 훌륭하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차고 넘치는’ 상향 평준화의 시대에서 뛰어난 디자인 스킬과 좋은 포트폴리오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아이폰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 애플파크를 건축한 노먼 포스터,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조너선 반브룩, 색동 줄무늬 패션으로 유명한 폴 스미스, 세련된 디자인으로 전 세계 주부를 사로잡은 다이슨의 제임스 다이슨까지. 모두 영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그런데 이들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디자이너를 존중하는 사회일수록 좋은 디자인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K팝과 K드라마 뒤에는 많은 디자이너의 땀과 노력이 있다. K웨이브를 만들어가는 K디자인을 논하기에 앞서 디자이너에 대한 정당한 존중을 표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된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디자이너는 자기만족을 목표하는 예술가와 달리 고객과 사용자의 만족을 위해 일한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고객의 불평·불만을 수용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같은 성향이 고객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억울한 일이 닥쳤을 때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그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디자이너가 수두룩하다. 또 디자이너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제안이 ‘최선’임을 외롭게 주장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설득에 실패해 제안이 거부당하더라도 박탈감을 홀로 감내해야 한다.
디자이너에 대한 처우는 아직 열악한 수준이다. 국회에서 디자이너 과로 자살 진상 조사 결과 발표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토론회를 연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듯하다. 직장 상사는 퇴근 30분 전에 디자이너에게 업무를 맡기며 “간단한 건데 내일 아침까지 줄 수 있지?”라고 말한다. 인테리어에는 수천만, 수억원을 쓰면서 기업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담는 로고 디자인은 “밥 한 끼”로 대신하려는 무례한 사람도 있다. 자신의 감식안을 과신한 나머지 디자이너의 선택을 제멋대로 망가뜨려 버리는 비전문가가 수두룩한가 하면, 비상식적일 정도로 많은 수정을 요구하고선 “미안, 처음 시안이 더 낫네”라며 허무한 말을 던지는 클라이언트도 많다.
전문성 인식 부족·처우도 열악
디자이너에게 이 같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이유는 디자이너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결과물의 외양만 보고 “그 정도는 나도 하겠다”는 식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디자이너의 전문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고뇌의 시간이 축적돼 있다. 디자인 시안 뒤에 숨은 디자이너의 전문성과 정성을 신뢰할 때에야 클라이언트는 훌륭한 디자인 결과물을, 디자이너는 인간적인 직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인식 개선과 더불어 제도적 해결책도 필요하다. 디자인계는 산업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데 비해 사업장 수는 2018년 6500곳에서 매년 1000곳씩 꾸준히 늘어 현재 디자인 전문 기업이 1만 개에 육박하는 과포화 상태다. 훌륭하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차고 넘치는’ 상향 평준화의 시대에서 뛰어난 디자인 스킬과 좋은 포트폴리오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英은 유명 디자이너에 기사 작위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주로 최저가 입찰제 형식으로 과제를 공모받는데, 적게는 3곳에서 많게는 10곳 이상의 디자인 기업이 한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경쟁한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2주에서 한 달가량을 매달려 주말까지 반납하며 열정을 불태운다. 하지만 대부분 공모 사업은 최종 선정자 한 곳에만 계약금을 지급한다. 탈락한 나머지 9곳은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영세한 작은 디자인 기업은 자금 문제로 휘청거리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생각의 중요성,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사회라면 경쟁에서 탈락한 기업의 노력에도 리젝트피 등을 도입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33만 디자이너의 대변기관,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도 디자이너의 권익보호를 위해 댓가기준을 매년 산정하고, 디자인통합민원센터를 통해 디자인권리보호에 앞장서고 있다.아이폰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 애플파크를 건축한 노먼 포스터,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조너선 반브룩, 색동 줄무늬 패션으로 유명한 폴 스미스, 세련된 디자인으로 전 세계 주부를 사로잡은 다이슨의 제임스 다이슨까지. 모두 영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그런데 이들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디자이너를 존중하는 사회일수록 좋은 디자인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K팝과 K드라마 뒤에는 많은 디자이너의 땀과 노력이 있다. K웨이브를 만들어가는 K디자인을 논하기에 앞서 디자이너에 대한 정당한 존중을 표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된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