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의 교육과 세상] '교육교부금 삭감 논란'에서 놓치고 있는 것
학생 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증가해 초·중·고 공교육 예산이 남아돌고 있다며 이를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런 주장에 대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시설 개축, 교사·학생 비율 개선, 디지털 학습환경 구축 등을 이유로 교육교부금 삭감을 반대하고 있다. 학생 수의 지속적 감소와 교육교부금의 꾸준한 증가로 공교육 여건이 나아져야 함에도 학력 저하가 심화하고 교육 양극화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교육당국의 항변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교육교부금을 감축하자는 쪽이나 안 된다는 쪽이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기존대로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적 전환기에 맞게 질적 변화를 구현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기존 교육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면 기재부 논리대로 교육교부금을 삭감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런데 시대적 전환기에 부응해 교육을 질적으로 변환하려 한다면 삭감이 아니라 더 늘려야 할지 모른다.

한국의 초·중등 학생 1인당 교육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고 하지만, 수능과 내신이 둘 다 객관식 상대평가인 유일한 OECD 국가라는 점은 외면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우리 교육이 이제는 정해진 지식을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스스로의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대적 전환기에 있다. 이를 대비하고자 공교육 곳곳에서 변화의 시동을 걸고 있다.

그런데 기계로 채점하는 객관식 시험에서 벗어나 비판적 창의적 생각을 논술로 쓰고 평가하려면 이를 일일이 피드백해줘야 학생들의 실력이 느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사 1인이 지도하는 학생 수가 훨씬 적어야 하고, 교사들이 교육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으는 행정 업무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 또 객관식 문제풀이가 아니라 논술과 프로젝트로도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교사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 이 모든 것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교육예산을 삭감하자는 건 이런 질적 변화를 포기하자는 것이다.

양극화는 어떤가. 2017년 KDI에서 발표한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방향’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인식하는 청년들의 성공 요인에서 미국은 ‘노력’이 1위고, 중국과 일본은 ‘재능’이 1위인 데 비해 한국만 ‘부모의 재력’이 1위였다. 2위는 인맥, 3위는 재능이었으며 ‘노력’은 순위권 밖이었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교육이다.

교육비가 남아돈다고 해도 공교육의 질적 변화는 체감할 수 없다. 교육당국이 책임을 통감해야 할 뼈아픈 지적이다. 심지어 코로나 사태로 학교에 제대로 못 가게 되자 중위권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위권이 늘면서 학력 격차가 커지는 것도 심각한데, 학교에 덜 가니 상위권도 늘어났다는 건 교육당국이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이다.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아이들에게 오히려 학교가 그동안 방해됐다는 말 아닌가.

학습 결손으로 인한 학력 격차 해결은 학생 각자를 개별 지도해야 가장 효과적이다. 연간 21조원(2019년 통계청)에 달하는 사교육비의 가장 큰 원인은 ‘학교수업 보충·심화’다. 공교육이 미흡해서다. 이를 해결하려면 교사가 직접 하든 인공지능 튜터를 활용하든 예산이 필요하다. 무상교육만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 공교육의 질적 수준을 사교육보다 높여 모든 학생이 시대적 역량을 기를 수 있게 해야 가난이 대물림되는 고리를 약화할 수 있다.

공교육은 부실하게 운영했다고 예산을 삭감할 영역이 아니다. 2025년 고교학점제, 2028학년도 대입의 논술형 수능 등 모두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파격적 예산이 더 필요하다. 기재부는 시대적 역량의 국가 경쟁력 강화, 양극화 해소, 저출산 원인 해소 등을 위한 국가 미래 전략의 일환으로 공교육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인식 없이 교육교부금을 학생 수 감소를 명분으로 기계적으로 삭감한다면, 공교육의 질적 변화로 해소할 수 있는 사회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고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