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두기'가 필요해
적잖은 이들에게 설이나 추석은 스트레스가 극도로 증폭되는 시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임이 줄었다곤 하지만 명절은 여전히 ‘취직은 했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같은 오지랖 넓은 간섭, 십수 년 전의 얌전한 생쥐 같았던 일을 난폭하게 날뛰는 코끼리로 뒤바꾸는 왜곡된 기억, ‘너는 잘못했고, 내가 잘했다’는 부질없는 책망이 오가기 쉬운 탓이다. 가족애로 포장된 이면에는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어설픈 인간관계가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다. 명절을 쇠고 난 뒤 많은 이들이 관계 맺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절감하는 이유다.

《커넥트》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인기 강의로 자리 잡은 ‘대인관계 수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 책이다. 수업을 오랜 기간 담당했던 부부 교수가 상사에겐 왜 솔직한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지, 가족 사이에도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해를 거듭하는지 등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분석했다.

[책마을]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두기'가 필요해
사람 간의 관계 맺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잘 모르는 이, 업무상 형식적으로 만나는 이들과는 사이가 틀어질 일이 거의 없다.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회복하기 힘든 금이 가는 것은 친밀하다고 느꼈던 사람 간에 주로 벌어진다.

이런 점을 반영하듯 책은 ‘각별하다(exceptional)’고 칭해지는 관계에 논의를 집중해 전개한다. 그야말로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이 나에 대해 진정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지난 주말 레스토랑에서 어떤 메뉴를 시켰는지는 수백 명의 페이스북 친구도 알 수 있지만 내가 수년간 식이장애로 고생했다거나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발버둥치는 건 웬만해선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일에 커피 쿠폰 선물을 주고받는 수준을 뛰어넘어 포장되지 않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흔히 각별하다는 용어를 접하면 마찰이 없는 상태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오히려 각별한 사이에서 갈등이 자주 빚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중요해지면, 관계도 더 복잡해지고 털어놓는 이야기의 수준과 위험 부담도 현저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담과 기대가 커지면서 의견충돌이 잦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평범한 인연에선 할 수 없는 발언과 행동이 오간다. 진짜 친구는 당신이 듣고 싶은 것을 말하는 이가 아니다. 진정으로 각별한 이들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최선이라고 믿는 것을 전하려 한다.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는 이는 중요한 관계가 손상을 입을 줄 알면서도 선을 긋는 사람이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말은 기분에 거스르는 경우가 많고, 관계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따라서 특별할 사이일수록 대립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소한 불편이 순식간에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만큼 불편한 감정이 쌓이기 전에 타인의 말과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문제를 인지시킬 때는 충고나 지적보다 불편한 말과 행동에 한정해 피드백하는 것이 유용하다.

하지만 아무리 신경을 쓰더라도 갈등은 자칫 해결책이 없는 수렁으로 빠지기도 한다. 습관과 타성에 휘둘리고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경우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다. 40대 자식에게 10대 청소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방식으로 간섭은 계속하지만, 자식의 의견은 뭉개버리는 아버지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이처럼 가까운 이가 잘못된 소통 방식을 고집할 뿐 아니라 바뀔 생각조차 없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갈등을 방치만 할 수는 없다.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특정 크기의 옷이 모두에게 맞을 수 없듯, A라는 관계를 개선하는 데 잘 어울리는 해법이 B라는 관계에서는 잘 먹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각별한 사람과의 갈등을 줄이는 방법으로 ‘사랑’으로 이해하라거나, 대화를 늘리라는 식의 허무한 대책에 매달리지 않는다. 책이 전하는 해법은 ‘건조하다’는 인상마저 비친다. 방해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내버려 두거나 상대방이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 물러나 갈등을 피하라고 권하는 식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먼저 객관적인 현황을 파악하라는 훈수도 건넨다. 갈등을 빚는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말고, 이해와 동의를 구별해 대하라는 것이다. 요컨대 자신을 옥죄고 있는 대인관계의 사슬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그 사슬을 완전히 풀지는 못하더라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헐겁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