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고령화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으로 한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요인은 단연코 고령화다. 하지만 어떤 대선 주자도 이를 해결할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거론되지만 효과가 있을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효과가 있더라도 신생아가 생산활동을 하기까지 20여 년을 기다려야 한다. 오랫동안 손 놓고 있기에는 고령화로 인한 경제 충격이 너무나 깊고 중대하다.

고령화는 경제 곳곳에 영향을 미치지만 궁극적인 부작용은 경제 성장을 낮춰 소득 수준이 정체된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시 제기된 영속적인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가설의 근거도 인구증가율 감소다. 그렇다면 고령화는 왜 경제 성장을 낮추는가? 최근 연구들은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지적한다.

첫째, 고령화는 당연하게도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초래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과거 기적적인 경제 성장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함에 따라 이들이 부양받을 처지가 되고 생산활동에 종사해야 할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면서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

둘째, 고령화는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자본 축적을 둔화시켜 경제 성장을 낮춘다.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엔 은퇴 후를 대비한 저축이 증가한다. 하지만 고령화가 심해진 이후에는 고령층이 기존에 확보한 저축을 활용해 생활하는 과정에서 저축을 줄이므로 전체 경제의 저축률은 하락한다. 저축이 줄어듦에 따라 이를 토대로 행해져야 할 투자도 감소해 자본 축적은 둔화된다. 이뿐만 아니라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력의 감소는 보완관계에 있는 자본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자본 축적을 할 유인도 감소한다.

셋째, 흔히 기술 진보로 해석되는 총요소생산성이 더디게 증가한다. 기술 혁신은 흔히 스타트업 창업을 통해 이뤄지는데 젊은 인구가 감소하면 창업이 줄어들어 기술 혁신에 불리하다. 생물학적으로도 혁신적인 생각은 젊은 나이에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고령화가 진행되면 혁신적인 기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고령화가 진전되면 기업 및 근로자의 활력이 약해지고 ‘창조적 파괴’가 줄어들어 경제 성장이 낮아진다.

이 세 가지 요인 중에서 고령화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세 번째 요인인 기술 진보의 둔화다. 각각의 요인이 성장 둔화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적으로 측정해 보면, 성장 둔화의 거의 100%를 기술 진보 둔화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 개발 과정에서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에 초점을 맞추고 출산율을 높이거나 이민자 유입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정책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민자 유입을 장려하는 것은 당장의 노동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한국과 같이 구성원 간 동질성이 높은 국가에서는 자칫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양질의 근로자가 이민 오는 것이 도움되지만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이들을 끌어들일 매력이 높지 않은 형편이다.

결국 현실적으로도 고령화로 인해 기술 진보가 둔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 성장률 하락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다. 그런데 최근 고령화가 기술 진보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정반대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로봇이나 인공지능(AI)과 같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기술 개발에 노력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기술 개발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또한 로봇과 AI 발전은 과거의 기술 개발과 달리 고령층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로봇이 담당함에 따라 체력적으로 젊은 층에 비해 불리한 고령층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연구들은 고령화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정부는 고령화를 기회로 삼아 오히려 이를 극복하는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이런 과정에서 고령화의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는 정책을 고안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