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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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금융감독원에 제공하던 100억원 규모의 출연금을 삭감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수백억원대 이익(수지차익)을 거둔 만큼 발권력을 동원해 지원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이 갈등을 빚고 있는 관계당국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국 등쌀에 시달린 한은

4일 관계부처와 한은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해 12월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감원에 대한 출연금 납부를 중단하는 내용 등을 담은 2022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금융감독원의 모태는 과거 한은 소속 은행감독원이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정부는 금융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흩어진 금융감독기구의 통합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한은의 은행감독원을 떼어내 지금의 금융감독원을 세운다. 금융감독원은 새 거쳐를 마련하기 위한 재원 등을 위해 한은에 국공채 7000억원어치의 출자를 요구한다. 한은은 이를 거절하는 대신에 출연금을 내게 됐다. 2006년부터는 출연금 규모가 연 100억원으로 굳어졌다. 금감원은 관례에 따라 한은에 올해 출연금으로 163억원을 요청했지만, 한은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한은은 금감원의 여윳돈이 적잖다고 봤다. 1999년 한은 출연금이 금감원 총예산의 31.2%에 육박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 2.7∼2.8% 수준으로 급락했다. 금감원은 2020년 수지차익(총수입에서 총지출을 제외한 금액)으로 624억원을 거두기도 했다. 금감원의 예산권을 통제하는 금융위는 출연금을 놓고 한은과의 막판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앙금 쌓인 한은, 출연금 삭감 강행할까

한은의 출연금 삭감은 어느정도 예견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 금융위와 갈등을 빚는 한편 권한도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유일한 반격 수단인 출연금을 활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은은 한솥밥을 먹었던 금감원과 줄곧 갈등을 빚어왔다. 공동검사와 자료 공유에 소극적인 금감원에 대한 앙금이 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금융위와의 갈등도 출연금 삭감의 배경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한은의 금융결제 권한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여기에 금융위는 2019년 금융결제권한과 직결되는 금융결제원장 자리를 사실상 한은으로부터 빼오기도 했다. 1986년 금융결제원 설립 이후 한은 출신이 줄곧 원장 자리를 맡아 오다 2019년 처음으로 한은 출신이 아닌, 김학수 전 금융위 상임위원이 원장에 선임된 것이다. 오는 4월 말 만료되는 감학수 원장 후임 자리를 놓고 금융위와 한은은 "내줄 수 없다"며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낮은 임금인상률도 출연금 삭감 배경의 하나로 거론된다. 한은은 올해 임금인상률 0.9%대 안팎으로 알려졌다. 다른 금융기관과 금융공기업의 2~5%대 인상률을 크게 밑돈다. 한은의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 결정을 놓고 한은 임직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기재부, 금융위, 금감원 등 정부와 유관기관 등쌀에 시달리던 한은이 반격의 수단으로 금감원 출연금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