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설을 맞이하여 근로자들과 군 장병들, 학생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진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설을 맞이하여 근로자들과 군 장병들, 학생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진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괌도(島)의 주요 군사 기지들을 제압·견제하고, 미국에 엄중한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 중장거리 전략 탄도로케트 화성-12형 4발의 동시발사로 진행하는 괌 포위사격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

2017년 8월 김락겸 당시 북한 전략군 사령관이 내놓은 경고입니다. 그리고 5년 가량 지난 지난달 30일 북한은 괌이 사정권에 드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을 재개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올 들어서만 일곱 번째입니다. 특히 미국령 괌까지 사정권에 드는 화성-12형 발사로 중·장거리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는 2018년 모라토리엄(잠정 중단)을 전면 폐기하는 수순에 이르렀습니다.

'괌 포격사위' 협박한 미사일 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31일 보도에서 '화성-12형'의 발사 장면과 이 미사일이 상공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뉴스1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31일 보도에서 '화성-12형'의 발사 장면과 이 미사일이 상공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뉴스1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1일 “국방과학원과 제2경제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기관의 계획에 따라 1월 30일 지상대지상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검수 사격 시험이 진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수 사격’은 대량 생산되고 있는 무기를 무작위로 골라서 쏜다는 의미입니다. IRBM 화성-12형이 이미 실전 배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북한은 보란듯이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화성-12형이 발사되는 모습과 함께 미사일에 설치된 카메라가 촬영한 지구 사진까지 공개합니다.

북한이 중거리급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2017년 11월 ICBM ‘화성-15형’ 발사 후 처음입니다. 북한이 화성-12형을 발사한 것은 같은 해 9월 6차 발사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미사일은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발사돼 2000㎞ 고도로 약 800㎞ 날아갔다고 탐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사거리를 줄이고 고도를 높여 미사일 성능을 점검하기 위해 화성-12형을 ‘고각 발사’했습니다. 이를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최대 사거리는 4500~5500㎞입니다. 한국과 일본 전역은 물론 미군 태평양사령부의 핵심 기지인 괌까지도 사정권에 듭니다.

이같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지난달 20일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해볼 것”이라며 모라토리엄 폐기를 시사한 지 불과 열흘 만에 이뤄졌습니다. 지난 4년간 북한은 IRBM을 발사하지 않아 왔습니다. 모라토리엄을 폐기한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평가가 나오는 아유죠.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미는 화성-12형을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구분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로 간주한다”며 “김정은이 2018년 6월 내린 모라토리엄의 일부를 파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25일이라는 짧은 기간 미사일 도발에 일곱 차례나 나선 것은 유례가 없습니다. 김정은 집권 3년차이던 2014년 3월과 7월 각각 여섯 차례 미사일을 발사한 게 앞선 최다 기록이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ICBM 도발에 나서진 않았지만 근접한 것이죠.

文 "국제사회의 노력에 대한 도전이자 안보리 결의 위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1년 만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안정, 외교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대한 도전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위배되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 다음날 육군 미사일사령부를 전격 방문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포함한 연이은 미사일 시험발사가 우리에게는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끝내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북 전문가들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북한의 무력 도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단기적 차원이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장기적 차원이라는 뜻이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 제재 해제나 김정은의 업적 과시, 미국의 관심 끌기 등은 부차적이고, 최근 무력 도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최종 목표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 달 사이 7차례의 미사일 발사에도 정부가 ‘도발’이란 표현은 끝내 자제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북한이 다음달 9일 대선을 전후해 향후 ICBM 발사 등으로 도발 수위를 높일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ICBM급’으로 간주하는 ‘화성-14형’에 이어 ICBM ‘화성-15형’의 검수사격까지 할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미 한국 전역이 북한의 핵 사정권에 든지 오래인데, ‘레드라인’의 기준과 ‘도발’의 기준이 너무 관대한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