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작년부터 시작된 철강 제품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 추진에 전기료 인상까지 예고돼 철강업계의 비용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제품 가격의 추가 인상도 예상된다. 업계에선 전자·자동차·조선·건설 등 주요 산업의 원료인 철강 가격이 전방위적으로 높아지는 ‘스틸플레이션(스틸+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강사 "非고철·전기료 상승도 가격 반영"…조선·건설사 '비상'

현대제철, 새 가격 책정 기준 도입

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철근 생산사인 현대제철은 기존 철근·봉형강류 가격 책정 기준을 변경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과거엔 철스크랩(고철) 시세를 주로 고려해 등락폭을 결정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다른 원료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전기, 전극봉, 합금철 등 생산에 필요한 주요 원료 가격을 반영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현대제철은 전체 생산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전기료와 비(非)고철 원료 가격 변화를 제품 가격 책정 기준 변경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우선 전체 생산비용에서 약 10%를 차지하는 전기료는 오는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두 자릿수대 인상이 예고돼 있다. 전기로에서 고철을 녹일 때 함께 투입하는 흑연 막대인 전극봉의 1월 말 기준 국제 가격은 개당 약 1만8000위안으로 1년 전에 비해 50% 정도 올랐다. 바나듐, 몰리브덴 등 제품 특성을 맞추기 위해 투입하는 합금철 가격도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주 원료인 고철 가격은 13년 만에 최고 수준인 t당 60만원 선을 넘어섰다. 현대제철이 이달 유통하는 철근 가격을 전월 대비 약 3% 인상한 107만원 선으로 정한 이유다. 2월 철근 가격에는 아직 가격 인상이 현실화하지 않은 전기를 제외한 나머지 원료의 시세 변동분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전기료 인상이 이뤄지면 2% 이상의 추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제품 가격에 반영할 변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다른 제강사들도 원료값 변동폭을 더 정밀하게 제품 가격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석탄·아연 가격 폭등, 강판도 인상 압력

철근뿐 아니라 자동차강판, 조선용 후판 등 판재류 가격도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사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자동차강판 가격을 5~10% 정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두 제품군 모두 지난해 이미 각각 20%, 40%가량 가격이 올랐다.

이는 작년 5월 역대 최고치인 t당 233달러를 기록한 국제 철광석 가격이 140달러대로 40%가량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하지만 제철용 원료탄 가격은 3일 기준 t당 442.9달러로 작년 저점 대비 4배가량 상승했다. 통상 고로에 투입하는 철광석과 석탄의 비율이 7 대 3임을 감안하면 원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철강업계의 설명이다.

철강 제품의 내구성, 내열성을 높이기 위해 쓰는 아연, 알루미늄, 니켈 등 비철금속 가격 역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0~50% 뛰었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작년 한 해 2배 올랐다”며 “탄소감축 기술 개발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고 있어 제품값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철강제품 가격이 오르는 스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자동차, 조선, 전자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원가 부담이 늘면서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통상 자동차 원가에서 강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조선은 30% 수준이다. 철근이 아파트 공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6%에 달한다.

업계에선 탈원전 등 정부의 급격한 탄소중립 행보도 원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철강업체 임원은 “최근 철강업계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을 태우는 고로 대신 전기로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며 “전기 수요는 점점 느는데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