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잃어버린 10년'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해외공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고위직 공무원을 만났다. 수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던 그는 귀국 후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한국의 젠더갈등이라고 콕 집었다. 특히 ‘이대남’ 현상은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이대남’은 국제사회에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현상이라고 했다. 기성세대에 의해 이대남, 이대녀라고 구분된 대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담론이 무엇이냐고. 남학생, 여학생 모두 젠더갈등을 지목했다. 그들은 대학 내에서 젠더갈등을 두고는 대화는커녕 대립만 선명해진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한국 사회의 20대 젠더갈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지만, 그 저류에는 성장 정체와 분배 정치가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성장이 정체된 사회는 고정된 파이를 사회 구성원 간에 나눠 가져야 한다. 특정 젠더를 선호하는 정책이 추진되면 다른 젠더는 그만큼 불리한 몫을 받아들 수밖에 없다.

촛불시위 이후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공정’과 2010년 이후 한국 정치를 관통하고 있는 포퓰리즘 ‘분배 정치’는 양립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분열의 간극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래 세대가 처한 분열적 구조는 한국의 미래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다.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할 것인지 깊은 성찰과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시작은 분열의 정치와의 결별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한국의 미래 궤적을 결정짓는 선거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집권세력은 시대적 과제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해방 이후 20세기 후반을 근대국가 건설에 매진했던 대한민국.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달성하고,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 아니던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지난 10년간의 국가적 과제는 사회통합과 성숙한 복지국가였다. 그러나 도전의 심각성에 비해 응전은 초라했다. 구호만 난무했고, 비전도, 철학도, 실행 계획도 모두 미비했다.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소득주도성장 등의 담론이 등장했지만, 추격에 익숙했던 한국이 지도에 없는 길을 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미국 ‘카네기 카운슬(Carnegie Council)’의 리처드 카츠는 교통비, 통신비, 식료품비 등 물가지수를 반영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비교에서 한국이 일본을 2018년 추월했다고 분석했다. 분열적 정치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선전한 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는 고령화, 디지털 혁명에서 판가름났다. 일본은 디지털 대전환기의 물결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했다. 게다가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급속히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0년 68.2%에서 2020년에는 59.5%로 추락했다. 반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2000년 71.7%, 2020년 72.1%). 인구 구조가 성패의 절반을 가른 셈이다.

한국이 지난 10년간 정치지형을 초월하는 국가 전략을 세우고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더라면, 지금 한국은 더 높은 곳에 가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 지금부터가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30년 66.0%, 2040년 56.8%, 2050년 51.1%로 예측되고 있다. 급속한 하강곡선의 시작에 서 있는 셈이다.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우뚝 섰지만 더 역동적인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예정된 미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분열과 분배가 아니라 통합과 성장으로의 전환이다. 시대적 요청인 대전환에 실패한다면, 일본의 현재는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다.

향후 5년은 인구절벽으로 내몰리기 전 한국의 미래 궤적을 결정하는 진실의 순간이다. 미래 세대는 성장 정체를 극복하는 통합의 정치 리더십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선은 ‘잃어버린 10년’을 끝낼 수 있는 전환기적인 사건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