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불확실성 큰데…사전청약 늘리는 정부
입주자를 정한 뒤 아파트를 짓는 ‘선분양’이 대세였던 주택시장에서 사전예약, 사전청약 등 ‘사전분양’이 주류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사전청약은 선분양보다 2년가량 앞서 주택을 공급한다. 주택시장 수요를 분산시켜 과열된 시장 분위기를 완화하려는 취지의 제도다. 2009년 당시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적용됐다.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은 제도였지만 공급으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가 지난해 제도를 되살렸다. 서울시 산하 SH공사도 상반기부터 ‘사전예약’이란 이름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지난해 먼저 사전청약을 시작한 국토교통부는 올해에만 7만 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공분양 3만2000가구, 민간분양 3만8000가구 등으로 지난해의 두 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2024년까지 공급될 사전청약 물량은 공공 6만4000가구, 민간 10만7000가구에 달한다.

너도나도 앞당겨 집을 공급하겠다는데 불안하다는 지적도 많다. 사전청약이 지니는 구조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당첨자들에게 집을 주겠다고 약속은 했는데 입주 시기, 분양가격, 주택 품질 등 뭐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게 없다. 과거 보금자리 때는 입주까지 10년가량 걸렸다. 정부는 “토지보상 등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과거와 다르다”고 설명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남양주 왕숙, 부천 대장 등은 신도시로 지정된 지 3년이 됐지만 아직 보상률이 절반을 밑돈다. 고양 창릉은 토지보상을 위한 첫 단추도 채우지 못했다. 보상이 상당히 이뤄졌어도 개발에 지장을 주는 건축물 철거 등으로 착공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사전청약 당시 제시한 분양가 역시 향후 건축비 인상률이나 설계 변경 등으로 상당 부분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민원과 갈등에 따른 사회비용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전예약 시점부터 실제 분양이 이뤄지는 때까지 무주택자 지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전세난민 양산 역시 예견된 수순이다.

SH공사는 지난달 보도자료를 내고 후분양을 기존 공정률 80%에서 90% 시점으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SH공사는 과거부터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과 부실시공 방지 등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후분양을 했다. 분양 시점을 더 늦춰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과 권리 보호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행 선분양 제도는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고 부실시공 등 리스크에 노출될 위험도 키운다는 얘기가 된다. 이랬던 SH공사가 당장의 집값을 잡기 위해 불확실한 사전예약을 시행하겠다고 하니 시장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