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산업화, 민주화 다음이 '조선化'라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선출직은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新양반층, '3권 분립' 위에 군림
민주화인들 제대로 이룬 건가
불법·비리 교정시스템은 마비
현장선 법보다 주먹·떼법이 우위
'脫조선' 없인 선진국 자부 못해
오형규 논설실장
新양반층, '3권 분립' 위에 군림
민주화인들 제대로 이룬 건가
불법·비리 교정시스템은 마비
현장선 법보다 주먹·떼법이 우위
'脫조선' 없인 선진국 자부 못해
오형규 논설실장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판정 시비로 세계적인 눈총거리가 됐다. 올림픽정신마저 중국몽(夢)으로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영수(시진핑)를 위해 목숨 걸자’는 중국 선수단의 필사의 각오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김부겸 총리 말마따나 “국제사회 보편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국가주의 본색은 과거 우리에게도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에서 박시헌이 유효타에서 32-86으로 한참 밀리고도 3-2 판정승했다. 시상대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래도 지금 중국과 다른 점은 선수도 국민 여론도 그런 금메달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작년 도쿄올림픽에서 입상하지 못했어도 선수들은 자신의 노력을 대견해 했고, 국민은 큰 박수를 보냈다. 나라의 격(格)은 이렇게 스스로 만든다.
하지만 국격은 가장 취약한 분야에 의해 결정되는 ‘최소율의 법칙’이 작용한다. 국민이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변함이 없는 정치 수준이 국격을 갉아먹는다. 며칠 전 장면이다. “국회가 합의해도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심각한 발언이다.” 원내대표까지 지낸 여당 다선의원이 추경 대폭 증액에 반대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방송에서 퍼부은 말이다. 그는 한술 더 떠, “곳간지기가 주인 행세한다”고까지 했다. “감히 명을 거역해!”라던 전직 법무장관이 오버랩된다.
그런 게 민주주의인가. 선거로 뽑히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 절대반지라도 손에 쥔 것인가. 그의 발언을 뜯어보면 임명직은 선출직 아래 있고, 선출직이 요구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듯하다. 민주주의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선출직(입법부)이 멋대로 못하게끔 행정부와 사법부에도 해야 할 역할과 지켜야 할 원칙을 헌법에 명시해놨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집권세력은 헌법 위에 군림하니, 민주화인들 제대로 이룬 건가 싶다.
더 큰 문제는 불법비리가 명백히 드러나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를 바로잡을 국가 교정 시스템이 마비상태라는 점이다. 조국 재판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고, 윤미향 이상직은 아직도 국회의원 신분이다. 대장동 게이트,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숱한 권력형 비리 의혹도 대선판에 묻혀 넘어간다. 그토록 검찰개혁을 외치고 꼼수까지 써가며 공수처를 설치한 이유가 이런 건가. 당사자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법으로 단죄도 못하니 민초들이 ‘이것도 나라냐’고 묻는 게 아닌가.
사람이 태어나 사춘기를 앓고 어른이 되듯, 국가도 지난한 성장 과정을 겪는다. 선진국들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국은 경제 규모 세계 10위, 소득 3만달러 등 외견상 선진국이지만 압축성장의 성장통(痛)이 여전하다. 오히려 이념 진영 세대 젠더 계층 지역 등 갈등의 스펙트럼이 무지개처럼 더 넓어졌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은 ‘선진화’라는 화두가 한동안 회자됐다. 하지만 가치와 원칙이 결여된 얼치기 실용주의는 기회주의로 변질했다. 이후 사회는 광우병, 세월호, 촛불, 태극기, 코로나 등 아노미의 연속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 ‘잃어버린 10여 년’의 경로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개인보다 집단 중시, 경제활동(工商)에 대한 집요한 국가통제,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세금, 권력집단의 갑질과 특권층화, 쌈짓돈처럼 여기는 나라 곳간, 국제정세에 눈감고 세계 흐름 역행하는 시대착오…. 이쯤이면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이 ‘조선화(朝鮮化)’ 아닌가 심각하게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현장에선 법보다 주먹과 떼법이 훨씬 가까운 것도 그런 방증이다. 소수의 ‘선수’가 다수를 ‘호구’로 만드는 기득권 지대추구 역시 만연해 있다. 아무리 잘못해도 같은 편이면 봐주고 상대편은 씨를 말리려 드는 것은 조선시대 흔했던 모습 아닌가.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조선시대에는 도덕(도덕적 우위)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저절로 굴러들어온다고 믿었다”고 지적했다. 도덕을 지향하는 자들이 돈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에 기꺼이 가담하는 것은 ‘도덕지향성 국가’인 한국에선 그게 우월전략이란 얘기다. 탈(脫)조선 없이 선진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국가주의 본색은 과거 우리에게도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에서 박시헌이 유효타에서 32-86으로 한참 밀리고도 3-2 판정승했다. 시상대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래도 지금 중국과 다른 점은 선수도 국민 여론도 그런 금메달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작년 도쿄올림픽에서 입상하지 못했어도 선수들은 자신의 노력을 대견해 했고, 국민은 큰 박수를 보냈다. 나라의 격(格)은 이렇게 스스로 만든다.
하지만 국격은 가장 취약한 분야에 의해 결정되는 ‘최소율의 법칙’이 작용한다. 국민이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변함이 없는 정치 수준이 국격을 갉아먹는다. 며칠 전 장면이다. “국회가 합의해도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심각한 발언이다.” 원내대표까지 지낸 여당 다선의원이 추경 대폭 증액에 반대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방송에서 퍼부은 말이다. 그는 한술 더 떠, “곳간지기가 주인 행세한다”고까지 했다. “감히 명을 거역해!”라던 전직 법무장관이 오버랩된다.
그런 게 민주주의인가. 선거로 뽑히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 절대반지라도 손에 쥔 것인가. 그의 발언을 뜯어보면 임명직은 선출직 아래 있고, 선출직이 요구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듯하다. 민주주의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선출직(입법부)이 멋대로 못하게끔 행정부와 사법부에도 해야 할 역할과 지켜야 할 원칙을 헌법에 명시해놨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집권세력은 헌법 위에 군림하니, 민주화인들 제대로 이룬 건가 싶다.
더 큰 문제는 불법비리가 명백히 드러나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를 바로잡을 국가 교정 시스템이 마비상태라는 점이다. 조국 재판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고, 윤미향 이상직은 아직도 국회의원 신분이다. 대장동 게이트,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숱한 권력형 비리 의혹도 대선판에 묻혀 넘어간다. 그토록 검찰개혁을 외치고 꼼수까지 써가며 공수처를 설치한 이유가 이런 건가. 당사자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법으로 단죄도 못하니 민초들이 ‘이것도 나라냐’고 묻는 게 아닌가.
사람이 태어나 사춘기를 앓고 어른이 되듯, 국가도 지난한 성장 과정을 겪는다. 선진국들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국은 경제 규모 세계 10위, 소득 3만달러 등 외견상 선진국이지만 압축성장의 성장통(痛)이 여전하다. 오히려 이념 진영 세대 젠더 계층 지역 등 갈등의 스펙트럼이 무지개처럼 더 넓어졌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은 ‘선진화’라는 화두가 한동안 회자됐다. 하지만 가치와 원칙이 결여된 얼치기 실용주의는 기회주의로 변질했다. 이후 사회는 광우병, 세월호, 촛불, 태극기, 코로나 등 아노미의 연속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 ‘잃어버린 10여 년’의 경로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개인보다 집단 중시, 경제활동(工商)에 대한 집요한 국가통제,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세금, 권력집단의 갑질과 특권층화, 쌈짓돈처럼 여기는 나라 곳간, 국제정세에 눈감고 세계 흐름 역행하는 시대착오…. 이쯤이면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이 ‘조선화(朝鮮化)’ 아닌가 심각하게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현장에선 법보다 주먹과 떼법이 훨씬 가까운 것도 그런 방증이다. 소수의 ‘선수’가 다수를 ‘호구’로 만드는 기득권 지대추구 역시 만연해 있다. 아무리 잘못해도 같은 편이면 봐주고 상대편은 씨를 말리려 드는 것은 조선시대 흔했던 모습 아닌가.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조선시대에는 도덕(도덕적 우위)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저절로 굴러들어온다고 믿었다”고 지적했다. 도덕을 지향하는 자들이 돈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에 기꺼이 가담하는 것은 ‘도덕지향성 국가’인 한국에선 그게 우월전략이란 얘기다. 탈(脫)조선 없이 선진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