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차르 푸틴'의 '소련몽(夢)'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별명은 ‘설표(雪豹·눈표범)’다. 그는 어릴 때부터 권투와 유도를 배우며 악바리 근성을 다졌다. 16세 때 첩보원을 다룬 영화 ‘방패와 칼’에 전율을 느꼈고, 대학 졸업 전 비밀정보기관 KGB에 들어갔다. 이후 10년간 동독에서 KGB 요원으로 암약했다.

1991년 소련 붕괴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귀국 후 첩보력을 무기로 대통령이 됐다. 2000년 첫 집권 때부터 그가 내세운 구호는 ‘강한 러시아’였다. 집무실에 제정 러시아 차르(황제)인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강대국 소련과 옛 러시아제국을 합친 ‘대(大)러시아’의 야망을 키웠다.

이를 위해 벨라루스와 아르메니아 등 6개국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설립하고 신속대응군을 창설했다. 이 군대는 최근 카자흐스탄 시위에도 급파됐다. 경제적으로는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과 유럽연합(EU) 같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출범시켰다.

그는 ‘차르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세 번이나 전쟁을 벌였다. 1999년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체첸 수도에 무자비한 포격을 퍼부어 항복을 받아냈고, 이를 발판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2008년 3연임 금지에 막혀 ‘실세 총리’로 내려온 뒤에는 조지아를 침공했다. 2014년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했다. 이럴 때마다 그의 지지율이 치솟았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를 ‘에너지 무기’로 쓰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국민 통제, 민족주의적 포퓰리즘까지 동원했다. 이 모든 게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압박을 동시에 전개하며 옛 연방국가 재현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소련몽(夢)’의 일환이다. 전문가들은 그를 “러시아의 영향권에 대해 18~19세기 지도자처럼 사고하는 21세기 차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도록 헌법을 고쳤다. 스탈린 이후 최장기 기록을 넘보고 있다. 이에 따른 내부 반발을 잠재우는 방편 또한 ‘위대한 러시아를 위한 전쟁’이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이 방식이 먹혀들지 의문이다. 그간의 침공에선 비용과 사상자가 적었지만,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수십억달러와 무기를 지원하는 상황에선 러시아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표범’의 발톱은 자칫 자신을 해치기도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