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알코올 도수가 40도라는 것. 일부 위스키는 50도가 넘는 스페셜 버전도 있지만 대중적인 위스키는 대부분 40도에 맞춰져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도수 낮추면 위스키 아냐"…酒존심으로 지켜낸 알코올 40도 [명욱의 호모 마시자쿠스]
당시 영국 정부는 강력한 음주 억제 정책을 시행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주인공은 로이드 조지 재무부 장관이었다. 강력한 금주 운동을 추진했던 그는 음주는 노동의 효율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44.6~48.6도. 일단 이를 35도로 낮춰서 판매할 수 있도록 법안을 바꾸고, 이후 25도까지 낮추는 추가 법안도 만들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위스키의 원료는 맥아와 곡물이다.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원가와 원료 비율이 낮아지고, 이렇게 해서 남는 곡물을 군수품으로 이용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위스키업체들의 반발이 거셌다. 도수를 이렇게 낮추면 위스키가 아니라고 항의했다. 향수를 예로 들었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향수의 알코올 도수는 70~90도. 만약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휘발성 향미가 줄어들고, 향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위스키도 도수를 낮추면 위스키 특유의 향미가 적어져 더 이상 위스키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와 위스키업체들은 알코올 도수 40도 선에서 타협했다.

알코올 도수가 40도인 술은 위스키뿐만이 아니다. 보드카도 40도다. 보드카는 영국보다 훨씬 추운 북유럽, 동유럽 그리고 러시아에서 많이 마신다. 추운 지역에선 빙점이 높은 술은 보관하기가 어렵다. 알코올의 빙점은 영하 114.1도인데 함유량이 낮으면 영하 10도에서도 잘 언다. 40도짜리 보드카는 영하 45도에서도 얼지 않는다. 극한의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술인 셈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 보드카를 품질이 좋은 보드카로 본다. 심하게 춥지 않은데 얼어버리면 가짜 보드카라는 것이다.

40이라는 숫자는 서양 역사와 문화에서 많이 등장한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 동안 비가 내렸다. 유대인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40년간 광야에서 헤맸다.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재위 기간도 40년이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도 40이란 숫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단순히 기독교적 사상만은 아닌 것 같다.

중세 시대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흑해나 오스만 튀르크 등에서 배가 들어오면 방역 조치로 40일간 부두에 머무르게 했다. 그래서 방역을 의미하는 영단어 ‘quarantine’의 어원은 40일이다. 위스키는 당시 흑사병의 소독·치료제로 쓰이기도 했다. 서양인들에게 40이란 수는 ‘완벽’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완벽한 알코올 도수가 40도 이상이 된 배경 중 하나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명욱 교수는
주류 인문학·트렌드 연구가이자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의 공식 자문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