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개성상인' 보금자리…신진작가 요람으로 재탄생
OCI 창업주 송암(松巖) 이회림(1917~2007)은 생전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렸다. 신용·검소·성실이라는 개성상인의 3대 덕목을 몸소 실천하며 기업인들의 귀감이 됐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비누세수는 사치”라며 늘 물로만 세수할 정도로 근검절약을 실천했던 송암이지만 문화사업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평생 미술계를 후원했고, 1992년 인천 학익동에 송암미술관을 세워 소장품 보존에 힘썼다. 이 미술관은 2005년 평생 수집한 문화재 8400여 점과 함께 인천시에 기증했다.

서울 수송동 조계사 인근에 있는 OCI미술관은 송암의 유지를 이어 2010년 그의 사저 터에 들어선 미술관이다. 이곳에서는 미술관이 소장한 근·현대미술 작품 2만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송암이 살던 집, 신진작가 보금자리로

송암은 생전 이 터를 유난히 아꼈다. 1954년 오래된 양옥집을 사서 입주한 뒤 증축과 개축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5층짜리 건물로 만들었다. 평소에는 손수 나무를 가꿨고 공사를 할 때는 벽돌을 쌓는 조적공(組積工)을 직접 데려올 정도로 많은 정성을 들였다.

송암의 집이던 이곳은 이제 한국 현대미술 신진 작가의 보금자리가 됐다. OCI미술관은 개관 때부터 신진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데 주력했다. 설립 첫해부터 운영 중인 ‘OCI young creatives’는 대표적인 차세대 신진작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선정된 작가에게는 1000만원의 창작지원금과 OCI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기회를 준다.

재단이 2014년부터 운영 중인 ‘R1211’은 대만 타이베이국립예술대에 있는 관도미술관과의 협약을 통해 한국과 대만 작가들의 교류를 돕는 사업이다. 매년 선정된 양국 작가들은 수송동 미술관 인근에 마련된 창작활동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게 된다. 2011년 인천 학익동에 문을 연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로, 매년 8명의 작가를 선정해 지원한다.

미술관은 신진·중견 작가 초대전과 자체 기획전 등을 비롯해 연간 7~8회의 전시를 연다. 규모가 크거나 방문객이 많지는 않지만 작품과 큐레이션 수준이 높다는 평가가 많다. 쾌적한 관람 환경과 직원들의 친절 등도 방문객들이 꼽는 장점이다.

선조들의 완상문화를 들여다보다

'마지막 개성상인' 보금자리…신진작가 요람으로 재탄생
지금 미술관에서는 소장품 특별전 ‘완상(玩賞)의 벽’이 열리고 있다. 도자기와 회화 등을 바라보며 즐거움을 얻었던 선조들의 완상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다. 이도헌 학예사는 “완상은 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한다는 뜻”이라며 “감상(鑑賞)과 비교하면 취미의 성격이 더 강한 단어”라고 설명했다.

1부 전시인 ‘완상의 시대: 서가에 든 그릇들’에서는 고려청자부터 조선백자까지 수준 높은 도자기를 연대별로 감상할 수 있다. 이 중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은 2016년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다. 병의 형태를 따라 사방으로 연속해 퍼지는 독창적인 만자(卍字) 문양이 특징이다. 2부 전시인 ‘문방청완의 향수: 그릇을 그리다’에서는 진귀한 옛 그릇과 화초, 과일, 채소류를 소재로 그린 ‘기명절지도’와 ‘책가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한국의 우수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사업의 일환이다. 주오사카한국문화원이 주관하고 OCI미술관이 기획했다. 전시는 3월 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