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류는 어쩌다 싸구려 제품들에 포위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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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의 힘
웬디 A. 월러슨 지음
이종호 옮김 / 글항아리
544쪽│2만5000원
행상인·경품 등 잡동사니의 역사 담아
"저가제품에 삶까지 싸구려 전락" 경계
웬디 A. 월러슨 지음
이종호 옮김 / 글항아리
544쪽│2만5000원
행상인·경품 등 잡동사니의 역사 담아
"저가제품에 삶까지 싸구려 전락" 경계
잡동사니는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플라스틱 거미 같은 장난감부터 문구류와 식기류, 용도를 알 수 없는 온갖 물건까지. 몇 번 쓰고 버려도 혹은 금방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은 이 잡동사니들은 현대 사회의 대량생산체제와 글로벌 무역의 빛나는 승리처럼 보인다.
《싸구려의 힘》은 이런 잡동사니들의 역사를 좇는다. 언제부터 사람들 곁에 싸구려 물건이 넘쳐나게 됐는지부터 시작해 싸구려 물건의 의미를 역사적·문화적·경제적으로 풀어낸다. 책을 쓴 웬디 A 월러슨은 미국 럿거스대 역사학과 교수다. 도서관, 박물관, 학회, 대학, 기업 자료실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싸구려 잡동사니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책은 싸구려의 기원을 18세기 미국 행상인에서 찾는다. “행상인은 저가품이 더 많은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자 사실상 소비자 혁명을 촉발한 주역이다.” 행상인은 마을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매혹했다. 바느질 가위, 진주 단추, 페인트칠을 한 양철 제품 등 조잡하고 초라한 물건도 행상인의 화려한 언변과 저렴한 가격이 더해지면 환상적인 물건들로 둔갑했다.
여기저기를 떠돌던 행상인들은 1790년대를 기점으로 상설 잡화점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동네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잡화점이지만 당시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이었다. 잡화점은 상품 구성이 제한적이고 뻔했던 단순 생필품점보다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은 불필요하지만 기발하고 제멋대로인 그 잡다함에 넋을 잃었다. 가게 주인들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물건을 ‘팬시 상품’이라 불렀다. ‘판타지’를 현대적으로 줄인 팬시가 잡화를 뜻하는 ‘버라이어티’보다 세련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낮은 균일 가격에 여러 물건을 파는 균일가 매장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모델을 대중화한 것으로 알려진 프랭크 울워스는 1879년 첫 5센트 균일가 매장을 열어 10년 만에 24만6700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50센트스토어, 99센트스토어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몸집을 불린 잡화점과 균일가 매장은 판매술을 정교화해 거대한 체인점으로 발전했다. 물건을 뒤죽박죽 쌓아놓고 파는 전략도 이때 탄생했다. 쌓여 있는 상품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품보다 싸 보이고, 좋은 물건을 찾아낼 수 있을 거란 ‘사냥의 스릴’을 자극했다. 쏟아부어서 쌓아놓은 고무굽은 잘 정리된 고무굽보다 열 배는 잘 팔렸다.
잡동사니의 역사에서 경품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공짜 물건들은 19세기 초에 나타나 소비자들의 삶에 싸구려를 채워 넣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비누 상인이던 하버드 로스는 거의 서른 가지 경품을 내세웠다. 비싼 경품이 당첨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그래도 공짜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세기 들어 이는 ‘광고 판촉물’로 발전했다. 만년필, 식기 세트, 달력, 문진, 지갑 등 업체의 이름이나 로고가 찍힌 물건들이 뿌려졌다. 사람들은 공짜라고 생각했지만, 공짜가 아니었다. 광고 판촉물은 소유자를 ‘걸어 다니는 광고판’으로 만들었다.
싸구려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도자기, 유리 제품, 인형, 접시, 조명 등 소비자들의 고고한 취향을 뽐낼 수 있게 해주는 물건마저 싸구려로 편입됐다는 것이다. 이런 물건들에는 역사나 서사가 부여되는데, 사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바산 황동 제품과 코끼리 모양 종, 이탈리아산 리넨, 골동품 도자기 등 이국적인 품목들도 실은 공산품에 불과했다. 수집품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원래 수집이란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 가치 있는 것들, 스스로 귀함을 설명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수집되기 위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의도적인 수집품’들이 나타났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새긴 기념 스푼, 수집용 조각상과 곰 인형 등이다.
저자는 싸구려 물건이 범람하면서 사람들의 삶까지 싸구려로 전락하지 않을지 경계한다. 우리가 사는 물건들이 우리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던 기업들이 저가품에 밀려 사라지는 것에도 우려를 나타낸다.
책은 풍부한 도판과 함께 잡동사니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담았다. ‘현대 세계를 만든 값싼 것들의 문화사’라고 할 만하다. 다만 이야기의 대상이 미국에 한정돼 다른 나라 독자들은 흥미가 덜할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싸구려의 힘》은 이런 잡동사니들의 역사를 좇는다. 언제부터 사람들 곁에 싸구려 물건이 넘쳐나게 됐는지부터 시작해 싸구려 물건의 의미를 역사적·문화적·경제적으로 풀어낸다. 책을 쓴 웬디 A 월러슨은 미국 럿거스대 역사학과 교수다. 도서관, 박물관, 학회, 대학, 기업 자료실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싸구려 잡동사니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책은 싸구려의 기원을 18세기 미국 행상인에서 찾는다. “행상인은 저가품이 더 많은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자 사실상 소비자 혁명을 촉발한 주역이다.” 행상인은 마을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매혹했다. 바느질 가위, 진주 단추, 페인트칠을 한 양철 제품 등 조잡하고 초라한 물건도 행상인의 화려한 언변과 저렴한 가격이 더해지면 환상적인 물건들로 둔갑했다.
여기저기를 떠돌던 행상인들은 1790년대를 기점으로 상설 잡화점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동네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잡화점이지만 당시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이었다. 잡화점은 상품 구성이 제한적이고 뻔했던 단순 생필품점보다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은 불필요하지만 기발하고 제멋대로인 그 잡다함에 넋을 잃었다. 가게 주인들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물건을 ‘팬시 상품’이라 불렀다. ‘판타지’를 현대적으로 줄인 팬시가 잡화를 뜻하는 ‘버라이어티’보다 세련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낮은 균일 가격에 여러 물건을 파는 균일가 매장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모델을 대중화한 것으로 알려진 프랭크 울워스는 1879년 첫 5센트 균일가 매장을 열어 10년 만에 24만6700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50센트스토어, 99센트스토어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몸집을 불린 잡화점과 균일가 매장은 판매술을 정교화해 거대한 체인점으로 발전했다. 물건을 뒤죽박죽 쌓아놓고 파는 전략도 이때 탄생했다. 쌓여 있는 상품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품보다 싸 보이고, 좋은 물건을 찾아낼 수 있을 거란 ‘사냥의 스릴’을 자극했다. 쏟아부어서 쌓아놓은 고무굽은 잘 정리된 고무굽보다 열 배는 잘 팔렸다.
잡동사니의 역사에서 경품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공짜 물건들은 19세기 초에 나타나 소비자들의 삶에 싸구려를 채워 넣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비누 상인이던 하버드 로스는 거의 서른 가지 경품을 내세웠다. 비싼 경품이 당첨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그래도 공짜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0세기 들어 이는 ‘광고 판촉물’로 발전했다. 만년필, 식기 세트, 달력, 문진, 지갑 등 업체의 이름이나 로고가 찍힌 물건들이 뿌려졌다. 사람들은 공짜라고 생각했지만, 공짜가 아니었다. 광고 판촉물은 소유자를 ‘걸어 다니는 광고판’으로 만들었다.
싸구려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도자기, 유리 제품, 인형, 접시, 조명 등 소비자들의 고고한 취향을 뽐낼 수 있게 해주는 물건마저 싸구려로 편입됐다는 것이다. 이런 물건들에는 역사나 서사가 부여되는데, 사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바산 황동 제품과 코끼리 모양 종, 이탈리아산 리넨, 골동품 도자기 등 이국적인 품목들도 실은 공산품에 불과했다. 수집품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원래 수집이란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 가치 있는 것들, 스스로 귀함을 설명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수집되기 위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의도적인 수집품’들이 나타났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새긴 기념 스푼, 수집용 조각상과 곰 인형 등이다.
저자는 싸구려 물건이 범람하면서 사람들의 삶까지 싸구려로 전락하지 않을지 경계한다. 우리가 사는 물건들이 우리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던 기업들이 저가품에 밀려 사라지는 것에도 우려를 나타낸다.
책은 풍부한 도판과 함께 잡동사니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담았다. ‘현대 세계를 만든 값싼 것들의 문화사’라고 할 만하다. 다만 이야기의 대상이 미국에 한정돼 다른 나라 독자들은 흥미가 덜할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