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18년 5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연 ‘게임 속의 오케스트라: 메이플스토리’ 콘서트에서 게임 OST를 연주하고 있다.  넥슨 제공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18년 5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연 ‘게임 속의 오케스트라: 메이플스토리’ 콘서트에서 게임 OST를 연주하고 있다. 넥슨 제공
영역 파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더는 베토벤과 브람스 같은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대중문화 팬을 클래식 공연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K팝을 비롯해 온라인 게임과 드라마 OST 등을 주제로 한 공연을 잇달아 준비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10일 SM엔터테인먼트와 ‘장르 간 협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2020년에 이어 국내 대표 교향악단과 연예기획사가 손잡은 것이다. 2년 전 서울시향은 SM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걸그룹 레드벨벳의 ‘빨간맛’과 그룹 샤이니 출신 종현의 ‘하루의 끝’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 뮤직비디오와 음원으로 선보였다. 유튜브에 공개된 두 영상은 지금까지 조회 수가 각각 171만 회, 72만 회를 기록했다.

올해도 서울시향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곡을 편곡해 선보인다. 온라인 콘텐츠만 제작했던 2020년과 달리 올해는 아이돌그룹과 협업해 대면 공연도 열 계획이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SM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설립한 클래식 전문 레이블 ‘SM클래식’을 홍보하고 서울시향은 클래식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려는 윈윈 효과를 기대한다”며 “클래식 문턱을 낮춰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더욱 자주 공연장을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게임으로 영역을 넓힌 오케스트라도 나타났다. 클래식 전문 공연기획사 스톰프뮤직은 넥슨과 함께 다음달 12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를 개최한다. 60명의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 최현이의 리드에 따라 메이플스토리 OST를 들려준다. 1부에서 ‘Above the Treetops’ ‘The Temple of Time’ 등 과거 메이플스토리에서 쓰인 곡을 연주한다. 2부에선 최근 게임들의 배경 음악을 엮어 들려준다. 연주하는 도중에 게임 플레이 영상도 상영한다. 메이플스토리는 국내 대표 게임사 넥슨이 2003년 출시한 온라인 게임으로, 전 세계 1억8000만 명이 즐기고 있다.

메이플스토리의 OST는 게임 이용자의 향수를 자극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넥슨이 출시 15주년을 맞아 메이플스토리 음악회를 처음 열었을 때 티켓 판매 시작 13분 만에 매진됐다. 최근에도 유튜브에서 메이플스토리 OST를 엮어 1시간 길이로 편집한 영상이 인기다. ‘메이플스토리 명곡 22선’은 조회 수가 420만 회에 달한다.

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드라마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드라마 OST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바꿔 연주한다. 오는 4월 9~10일 서울 잠실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더 팬 드라마 OST 콘서트’에서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동백꽃 필 무렵’ ‘닥터스’ ‘찬란한 유산’ 등의 OST를 연주한다. 모두 팬엔터테인먼트가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는 드라마다.

위필하모닉은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한스 짐머, 존 윌리엄스 등 영화음악 작곡가를 내세운 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열었다. 드라마 OST를 연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에선 뮤지컬 배우 정유지, 가수 이정권,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이 협연한다. 위필하모닉 관계자는 “드라마는 영화보다 대중에게 친숙한 콘텐츠라고 판단했다”며 “오케스트라로 접하면 클래식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인식이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케스트라의 ‘외도’는 해외에서도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각각 2020년과 2021년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의 지휘로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 ‘쥐라기 공원’ 등의 주제곡을 연주했다. 해당 연주를 담은 음반도 잇달아 클래식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