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적대의도 없다면서도 유화책 미공개…한미일 '反中연대' 강조
美 "인권침해 공급자에 덜 의존" 탈중국 역설…한미일 3자 공동성명 대만 첫 거론
韓, 미국에 새 대북 관여책 제안…어떤 옵션 포함됐는지 주목(종합)
한반도 정세가 민감한 갈림길에 선 가운데 한국 정부가 미국에 새로운 대북 관여 방안을 제안하는 등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공개적으로는 일단 북핵 대응에 원칙적 입장을 반복하며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연대'에 초점을 맞춘 모양새여서 앞으로 제안된 관여 방안이 구체화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12일(현지시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한미·한일·한미일 연쇄 외교장관 회의는 북한이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철회를 위협하며 정세를 '대치 국면'으로 되돌리려는 와중에 개최돼 새로운 대북 해법이 도출될지 관심을 모았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대북) 관여에 대해 미국은 분명히 열려있는 입장이고 그 구체적 방안에 대해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 측이 몇몇 방안에 대해 제안을 했고 미측이 상당히 경청했다"고 말해 한국이 새로운 대북 관여 방안을 미측에 제안했음을 시사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한국과 함께 종전선언, 대북 인도적 협력 등을 논의하며 대북 관여 의지를 드러냈지만, 기본적으로는 '조건 없는 대화'를 하자며 북한에 직접적으로 추가 유인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에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가 '적대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긴장 수위를 높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제안한 추가 관여 방안에 어떤 옵션이 포함됐을지 주목된다.

특히 일각에서 거론돼온 대북 백신 지원 등도 포함됐는지 관심이 쏠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앞서 호놀룰루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북 백신 지원의 경우 "우리 정부에서도 검토는 하고 있지만, 북한이 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는 별개 문제"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한국 측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한다면 향후 대화 재개를 위한 관련 국간 물밑 움직임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특히 2∼4월 북한의 주요 정치적 기념일과 한미연합훈련 등이 있어 정세가 고비를 맞는 만큼 시간이 많지는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추가 관여 방안을 진전시키는 시기와 관련해 "시급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조치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이번 달이다, 다음 달이다 할 일은 아니지만, 몇 달에 걸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당장 제안된 방안을 바로 공개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이날 미국이 겉으로 발신한 메시지만 놓고 보면 추가 유인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전제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에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상의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다.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대한 분명한 위반이라고 지적한 뒤 "북한에 책임을 물을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언급해 제재·압박 수단을 함께 추구할 뜻도 분명히 했다.

3국 외교장관의 공동성명도 북한의 잇단 탄도미사일 무력 시위를 규탄하고 기존의 대북 기조를 재확인하는 정도의 메시지로 수렴됐다.

오히려 미국이 이번 회의를 마련한 의도는 동북아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을 한자리에 모아 중국·러시아 등과의 대립 구도에서 공조와 연대를 강화하려는 데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한미일 대 북중러' 등 진영 경쟁 구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조짐도 일부 드러났다.

블링컨 장관은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이든, 규칙 기반의 질서를 저해하려는 이 지역 내 큰 국가들의 다른 행동이든…"이라고 거론하며 "공통분모는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인 기본적 원리가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함께 서서 우리 세 나라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칙 기반의 질서를 저해'한다는 것은 보통 미국이 중국을 비판할 때 쓰는 표현이다.

북중러의 행동을 유사한 연장선상에서 보면서 한미일 3자 공조를 강조한 것이다.

마침 북한에 주재하는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와 쑨훙량(孫洪量) 주북 중국대사대리도 전날 평양에서 만나 대북 관계를 논의하는 등 중러도 공동 대응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역내 주도권을 둘러싼 진영경쟁의 틀 내에서 북핵 문제를 다룬다면 해결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미국은 이날 공급망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3국의 공조 필요성도 직설적으로 거론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반도체와 핵심광물 등에서 팬데믹으로 노출된 우리의 공급망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고 환경 기준을 무시하는 공급자들에게 우리가 덜 의존하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을 침해하고 환경 기준을 무시하는 공급자'는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표현으로 보인다.

3국 공동성명이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를 포함하며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를 거론한 점도 주목된다.

한미일 3국 차원의 공동성명에 대만문제가 거론된 것은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해 5월 우리 정상의 방미 때 채택한 한미 공동성명에 나와 있는 표현을 다시 활용한 것"이라며 일반적인 차원의 문구라고 설명했지만, 중국은 대만 문제가 거론됐다는 것만으로 반발할 소지가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