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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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알루미늄 석탄 등 모든 게 부족하다. 이런 시장은 본 적이 없다. 세계가 분자(molecule) 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다.”

30년간 세계 원자재 시장을 분석해온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연구책임자의 말이다. 그는 올해 세계 원자재 시장에 ‘슈퍼 백워데이션’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현물 가격이 선물 가격보다 높은 백워데이션이 모든 분야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재 고갈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기업들의 원가 비용이 높아지면 물가 부담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치솟는 원자재 현물 가격

에너지 금속 농작물 등 23개 원자재 현물 가격을 추종하는 블룸버그원자재현물지수는 올 들어 10.5% 급등했다. 2020년 3월 이후 꾸준히 상승한 이 지수는 이달 초 559.03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11일엔 554.83으로 정점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에너지 가격과 금속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서다.

일부 원자재 현물 가격은 선물 가격을 넘어섰다. 블룸버그지수에 포함된 23개 원자재 중 9개 품목이 백워데이션 상태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지난달 21일엔 세계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28개 주요 원자재 항목 중 백워데이션 품목이 19개로 1997년 이후 가장 많았다.

선물 가격은 현물 가격보다 높은 게 일반적이다. 물품을 실제 주고받는 시기가 현물 시장보다 늦기 때문이다. 이런 가격 흐름을 ‘콘탱고’라고 한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 등에서 갑자기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면 희소성이 커져 현물 가격이 급등한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바로 상품을 받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백워데이션이다. 원자재 등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알루미늄 구리 등 금속류 부족 심각

올해 들어 알루미늄 시장에선 2018년 이후 가장 큰 폭의 백워데이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알루미늄 현물 가격은 올해에만 13% 뛰었다. 지난 9일엔 t당 3236달러로 13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는 알루미늄 가격이 1년 안에 t당 4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재고량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LME의 알루미늄 재고는 11일 기준 87만5250t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 137만9975t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니켈과 구리 재고도 감소세다. LME의 구리 재고량은 7만6325t으로 지난해 8월의 3분의 1수준이다. 세계 주요 상품거래소의 구리 재고는 40만t을 조금 넘는다. 1주일치도 남지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원자재 분석기업 ICIS에 따르면 유럽 가스 저장시설의 35%만 가득 찬 상태다. 매년 이 시기 평균치보다 낮다.

전기차 전환, 남미 가뭄도 영향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각종 금속 광물 수요도 급증했다. 팬데믹 탓에 채굴 등 수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농작물 등은 악천후의 영향을 받았다. 원자재 시장에 ‘슈퍼 백워데이션’이 번진 배경이다.

전기차 배터리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해 1년 동안 400% 급등해 t당 5만달러를 넘어섰다. 씨티은행은 올해 리튬 수요가 공급보다 6%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농작물 재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대두(콩) 가격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남미에 극심한 가뭄이 덮치면서 작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남미 파라나강의 수위는 가뭄으로 5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급 커피 품종인 아라비카 원두의 ICE선물거래소 비축량도 2000년 이후 최저다. 이 거래소에서 최근 아라비카 원두 가격은 10년 만에 최고치인 파운드당 2.59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년간 가격이 두 배 넘게 오른 데 이어 올해도 13% 급등했다. 카를로스 메라 라보은행 수석애널리스트는 “(커피) 재고 감소가 이어지면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상승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