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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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발효돼 보름여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자 뿐만 아니라 뜻밖에 근로자에게도 위험요인으로 부상중이다. 기업들이 건강문제로 근로자의 채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과실이 없어도 기업과 기업주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법이 과잉입법되는 바람에 사고발생 확률이 높은 근로자의 채용을 꺼릴수 밖에 없다는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건강이 취약한 지원자를 뽑은 뒤 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가 형사처벌 받을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급팽창하는 플랫폼 노동시장에서 이런 기류가 두드러진다. 육체 노동이 많은 유통·물류·택배회사들은 채용시 지정병원에서의 건강검진을 의무화하고 기저질환자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직업병 소견자를 사전에 걸러내는 새 '채용지침'을 마련하고, 건강검진때 ‘재검’정도만 나와도 바로 불합격시키는 회사도 등장했다.

특히 중장년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근로자들에게 중대재해법이 중대한 취업장벽이 되고 있다. 병력(病歷)이 있거나 건강에 조그만한 이상조짐이라도 있는 고령의 근로자를 채용대상에서 원천배제하려는 분위기가 만만찮다. 모호한 조항 탓에 어떤 경우에 처벌되는 지에 대한 명확성이 떨어지는 점이 소극적 채용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중대재해 발생시 고의 유무와 상관없이 경영자를 형사처벌하는 과잉입법의 유탄을 피하기 위해 선제적 자구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신입 뿐 아니라 기존 직원들도 중대재해법의 유탄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래전 병력을 이유로 숙련된 배달직에서 평생 안 해본 사무직으로 강제 인사조치된 사례도 회자된다.

적잖은 서민들의 생계 터전인 일용직 시장에서도 중대재해법 후폭풍이 거세다. 일용직 근로자를 건설현장과 연결시켜주는 인력사무소에서는 혈압계를 들고와 재는 풍경이 이제 낯설지 않다.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을 현장에 보냈다가 자칫 사고로 이어지면 거래처가 날아갈 수 있다며 인력사무소측에서 직접 혈압을 점검한다고 한다. 혈압 문제를 가진 중장년 근로자들은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돼 일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건강에 조금의 이상이 발견되면 일을 중단시키고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적잖다.

전 세계 '사망 1위 질병'일 정도로 환자가 많은 심뇌혈관계 질환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심장과 뇌의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발생하는 심근경색 협심증 뇌경색 뇌출혈 등을 통칭하는 심뇌혈관질환은 나이 들수록 발병률이 높다. 심뇌혈관계 질환을 유발하는 고혈압·당뇨·고지혈증 소견이 있는 중장년 근로자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질환을 앓는 것도 서러운데 생계가 걸린 취업전선에서까지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미 오래 전에 채용검진을 폐지권고한 상황에서 건강을 이유로 취업시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의 일종이다. 나이듦을 책망케 하고, 사소한 건강문제까지 시비걸며 억울한 차별을 양산하는 과잉입법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갈지 걱정이다.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