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도 이어지는 '쿨러닝'… 성적보다 빛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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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개봉한 영화 '쿨러닝'은 1년 내내 여름인 나라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선수들의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도전기를 그렸다. 눈 한번 내리지 않는 나라에서 자동차를 팔아 훈련 비용을 마련하고 '맨땅에 헤딩하듯' 연습해 출전한 올림픽에서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낸 이들의 도전은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후 쿨러닝은 1년 내내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의 선수들의 동계올림픽 도전을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됐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쿨러닝은 이어지고 있다. 14일 중국 옌칭 국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2인승 경기 1, 2차전에는 모나코, 브라질, 자메이카, 트리니다드토바고가 출전했다. 모나코는 지중해성 기후, 브라질과 자메이카,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열대성 기후를 지닌 국가다.
쿨러닝의 원조 자메이카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장비 마련을 위해 온라인 모금에 나섰다. 하지만 목표했던 금액을 채우지 못해 중고썰매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코로나19로 해외훈련이 어려워지면서 도로에서 자동차를 밀며 훈련하기도 했다. 이날 자메이카는 1.2차 시기 합계 30위로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성적보다 빛난 열정은 큰 박수를 받았다.
트리니다드토바코는 선수단 구성에서부터 애를 먹었다. 악셀 브라운은 봅슬레이 2인승 종목에 출전할 파트너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러다 SNS를 통해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는 육상선수 출신 안드레 마르카노를 알게됐다. 브라운은 마르카노에게 봅슬레이팀 합류를 제안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마르카노가 이를 수락하면서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2002년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이후 20년 만의 동계올림픽 출전이 SNS 메시지를 통해 성사된 셈이다.
알파인 스키에서는 남자 기술계 경기가 13일 시작되면서 여름나라 선수들의 도전이 본격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동계올림픽 출전 역사를 만들어낸 파이크 압디는 13일 열린 대회전에 출전했다. 이날 경기에는 자메이카의 첫 알파인 스키 올림픽 대표 벤저민 알렉산더, 역시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하는 아이티의 리처드슨 비아노, 에리트레아의 섀넌 아베다, 가나의 카를로스 매데르 등이 나와 설원을 누볐다. 인도의 아리프 모드 칸은 이번 대회 알파인 스키에 출전하기 위해 지난해 9월로 예정된 결혼까지 미루고 나왔다.
이날 베이징에는 많은 눈이 내려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고전했다. 출전 선수 89명 중 절반이 조금 넘는 46명만 1, 2차 시기를 모두 완주했다. 아브디는 1, 2차 시기 합계 2분 46초 85로 44위에 올랐고 칸이 2분 47초 24로 45위, 알렉산더는 3분 18초 52로 46위 등 완주한 선수 중에서는 최하위를 차지했다.
그래도 이들의 도전은 성적을 넘어서는 진한 감동을 안겼다. 칸은 경기를 마친 뒤 "눈이 많이 내려 다음 기문이 겨우 보일 정도로 어려웠다"며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 완주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올림픽에 처음 나와 좋은 경험을 했다"며 "꿈이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