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백 리셀가 한 달 전보다 300만원 떨어져
가격 비싼데 대중성 늘어…"누구나 드는 백" 인식
"줄 서서라도 갖고 싶다" 욕구 사라져
명품족들 사이에서 샤넬 기피 현상이 퍼지고 있다.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따라붙는 샤넬이지만,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꼭 갖고 싶다’는 욕구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오픈런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면서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그동안 샤넬 제품에 수백만원씩 붙던 프리미엄(웃돈)이 사라지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샤넬의 대표 제품으로 꼽히는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의 리셀 프리미엄은 최근 100만~200만원 넘게 하락했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인 크림에선 한 달 새 프리미엄이 300만원 가까이 떨어졌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클래식 미디움백 새상품 리셀가가 1400만원에 달했지만 최근엔 1100만원 선에 거래가 되고 있다.
이 가방의 매장가는 1124만원. 지난 14일 거래된 리셀가는 1120만원으로 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겨우 팔렸다.
리셀 시장에서 샤넬 제품 물량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오픈런이 빈번해지면서 일반 고객보다는 리셀러(재판매업자)들이 물건을 사들이는 비중이 커졌다. 자연히 리셀 시장에 물건이 많이 풀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백화점 샤넬 매장에선 일반 소비자들이 운좋게 제품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구매자는 리셀업자들”이라며 “아침 일찍 줄을 서서 경쟁해 가방을 구매해야 하는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업자들이 아니고서야 구매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매장에서 샤넬 제품을 팔면 그 다음날 리셀 시장에 나오는 물량이 많게는 70~80%에 달할 때도 있다고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샤넬 매장에서 가방 100개를 팔면 70~80개는 리셀업자들이 되판다는 얘기다.
한 리셀업자는 “한 두 달 전만 해도 샤넬 가방을 구입해 온라인 중고 플랫폼 등에 매물을 올리면 글이 게시되자마자 구매를 희망하는 이가 몇 명씩 붙었는데 최근엔 며칠씩 지나도 구매자가 없다”며 “리셀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클래식 미디움백마저 정가 이하로 리셀가가 내려 갔다. 물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리셀업자들은 상당히 손해를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픈런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샤넬 하면 백화점 오픈과 동시에 뛰어가는 ‘좀비런’, 길바닥에 주저앉아 매장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노숙런’의 모습이 각인돼서다. 통상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제품을 구매하며 느끼는 만족감을 중시하지만 최근엔 샤넬 제품을 구매하면서 이를 느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매장에 워낙 많은 고객이 몰리는 통에 여유로운 분위기, 친절한 서비스 등도 기대하기 힘들다.
백화점 두 곳에 VIP(우수고객)으로 등록돼 있는 김모 씨(35)는 “샤넬 매장은 안 간 지 오래”라며 “1000만원을 쓰면 각종 편의를 봐주며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명품 매장들도 많은데 샤넬 매장에 가서 리셀업자와 같은 대우를 받고 싶진 않다. 요즘엔 누구나 샤넬을 들던데 그만한 비용을 지불하고 남들과 똑같은 가방을 줄을 서가며 사야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일반 고객들 매장 방문이 어려워지고 리셀업자들이 구매를 독식하는 경향 때문에 샤넬 측도 매장 운영 방식을 고심하고 있다.
샤넬은 작년 7월부터 ‘판매유보고객’ 제도를 도입했다. 판매유보고객은 △매장을 과도하게 반복적으로 방문하거나 △샤넬 상품을 지나치게 많이 사들이거나 △다량 매집 고객에게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사람을 지칭한다. 그간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리셀업자 구매를 막았는데, 이제는 판매유보고객을 정해 이들에겐 상품을 팔지 않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으로는 사재기나 대리 구매 등 비정상적 쇼핑 문화가 사라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샤넬 등 명품 브랜드들이 물량을 제한하면서 오픈런을 유도하고, 예고 없이 상품 가격을 수십만~수백만원씩 올린 탓에 리셀러들 표적이 된 측면이 있다”면서 “한 번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