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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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정(23)에게 두 번의 눈물은 없었다. 압도적인 경기력은 편파 판정이나 몸싸움이 끼어들 틈을 내주지 않았다. 최민정이 쇼트트랙 1500m의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한 명쾌한 경기였다. 최민정이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전에서 2분17초81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쇼트트랙 여자 1500m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하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이날 최민정은 작정한 듯했다. 준준결승에서부터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다. 1500m는 그의 주종목이자 2018년 평창대회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나선 경기였다. 준준결승에서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2위를 4분의 1바퀴 차이로 멀찍이 떨어뜨리며 1위로 통과했다.

준결승에서는 드라마틱한 추월 장면을 만들어냈다. 레이스 초반 5위로 관망하던 그는 2바퀴를 남기고 아웃코스로 치고 나왔다. 거의 한 바퀴를 거침없이 질주하며 단숨에 선두로 치고 올라왔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최민정은 이 레이스에서 2분16초831로 2010 밴쿠버 대회에서 저우양(중국)이 세웠던 올림픽기록(2분16초993)을 갈아치웠다. 2016년 2분14초354로 이 종목 세계기록을 갖고 있는 최민정은 올림픽기록까지 보유하는 선수가 됐다.
최민정이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선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한 미수와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여자 3000m 계주, 1000m 은메달에 이어 자신의 세 번째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한 최민정은 전이경(금 4·동 1), 박승희(금 2·동 3·이상 쇼트트랙), 이승훈(금 2·동 3·스피드스케이팅)과 함께 한국인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에 등극했다. 최민정은 “함께해 준 동료들 덕분에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최민정이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선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한 미수와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여자 3000m 계주, 1000m 은메달에 이어 자신의 세 번째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한 최민정은 전이경(금 4·동 1), 박승희(금 2·동 3·이상 쇼트트랙), 이승훈(금 2·동 3·스피드스케이팅)과 함께 한국인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에 등극했다. 최민정은 “함께해 준 동료들 덕분에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결승전에서 최민정은 스타트부터 선두로 나서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펼쳐나갔다. 결승선을 11바퀴 남긴 경기 초반, 후위에 있던 한위퉁(28·중국)이 갑자기 속력을 높여 질주했다. 그러자 네덜란드의 쉬자너 스휠팅(25)이 따라붙었고 선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모두 속도를 높이며 선두그룹을 따라붙었다.

하지만 최민정은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체력을 아꼈다. 한위퉁과 스휠팅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질주 이후 체력이 떨어진 순간 3위에 있던 최민정이 선두로 치고 나갔다. 결승선을 8바퀴 남기고 주특기인 아웃코스 질주를 시작했다. 곧바로 선두를 차지한 최민정은 점점 속력을 높이며 2위 그룹과 거리를 벌렸다.

이탈리아의 베테랑 아리아나 폰타나(32)가 따라붙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최민정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며 올림픽 2연패를 기록했다. 올림픽 쇼트트랙 개인 종목에서 2연패를 달성한 것은 전이경(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 이후 최민정이 처음이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얼음공주’ 최민정은 환하게 웃었다. 은메달은 폰타나, 동메달은 스휠팅이 가져갔다. 이유빈은 6위로 경기를 마쳤다.

베이징에 오기까지 최민정은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겪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에서 두 차례나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과 무릎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최민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치료와 재활에 전념한 최민정은 월드컵 3차 대회부터 다시 복귀해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10월에는 정신적 충격이 그를 덮쳤다. 절친이자 라이벌이던 심석희의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문자메시지가 문제였다. 심석희가 최민정을 험담하고 비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평창 대회 1000m 결승에서 심석희가 최민정과 고의로 부딪쳤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사건으로 최민정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올림픽 중에도 불운이 적지 않았다. 혼성 계주에서는 결선 진출에 실패했고 500m에서는 코너를 돌다가 얼음 조각에 걸려 미끄러졌다. 1000m에서 마지막 역주로 은메달을 따낸 그는 감정이 복받친 듯 눈물을 쏟았다. 적잖은 시련과 마음고생을 이겨낸 기쁨의 눈물이었다.

최민정은 결국 1500m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쇼트트랙은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던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이뤄냈다. 이번 금메달로 최민정은 2018년 평창 대회에 이은 1500m 2연패와 함께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등 총 5개의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전이경, 박승희, 이호석(이상 쇼트트랙), 이승훈(스피드스케이팅)과 함께 동계올림픽 한국 선수 최다 메달 타이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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