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결승전. 결승선을 두 번째로 통과한 ‘맏형’ 곽윤기(33)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후 12년 만에 메달을 딴 빛나는 레이스였지만 “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라스트 댄스’는 메달 색을 넘어서는 큰 감동을 선사했다.

18세에 처음 태극마크를 단 곽윤기는 15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철저한 자기관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니어 때 쇼트트랙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쇼트트랙의 레전드’로 불릴 만한 업적과 이력을 이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그는 “그런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일찍 깨달았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이후였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최고 대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온리 원 플레이어’가 되는 데 집중했다. 164㎝의 단신에 호리호리한 몸은 자리 선점을 위한 치열한 몸싸움에 불리했지만 덩치가 큰 선수들은 시도하지도 못할 비좁은 공간을 파고드는 데 유리했다. 가벼운 몸을 활용해 순간 가속도를 키우고 방향을 자유자재로 트는 기술을 익혔다. 그의 인코스 추월 능력은 세계 최정상급이다.

그는 지난 15년간 금메달을 포함해 총 24개의 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2010년 밴쿠버 대회에는 남자 계주팀 막내로 참가해 은메달을 걸었다. 이후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발목 골절을 당해 선발전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18년 평창 대회 계주에서는 준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역주를 펼쳤지만 결승에서 후반에 임효준(중국명 린샤오쥔)이 넘어지면서 4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금메달 이상의 리더십으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 대표팀은 안팎으로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곽윤기는 호흡을 맞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여자계주팀에 특강을 열어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이번 대회 초반 중국에 치우친 편파 판정으로 팀 사기가 꺾이자 앞장서 비판에 나서 후배들의 사기를 높였다. 남자계주 결승전을 앞두고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다. 후배들은 올림픽을 충분히 즐겨줬으면 좋겠다”며 든든한 모습을 보였고 마지막 주자로서 값진 은메달을 수확했다.

실력과 끼, 든든한 리더십까지 갖춘 곽윤기에게 MZ세대도 열광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전 17만여 명이 구독하던 그의 유튜브 채널 ‘꽉잡아윤기’는 17일 오전 단숨에 구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결승전 직후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는 10만 명이 동시에 몰려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날 결승전 뒤에 열린 간이 시상식에서 곽윤기는 더 이상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춤을 선보이며 은메달을 자축했다. 올림픽 무대에서의 ‘라스트 댄스’는 끝났지만 인간 곽윤기가 보여줄 댄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맏형 리더십 빛난 곽윤기의 '라스트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