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시간에 들은 '솔베이그의 노래'부터 가제트 형사 원곡까지[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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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페르귄트'라는 작품을 아시나요. 아마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국내 무대에 자주 올랐던 작품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연극에 들어간 다수의 음악들은 잘 아시거나 친숙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학창 시절 음악 수업에서 배웠던 '솔베이그의 노래'가 대표적입니다. 서정적이면서도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드는 음악이죠. 이 곡뿐 아니라 아주 반가운 음악도 '페르귄트'에 나옵니다. 애니메이션 '형사 가제트' OST의 원곡 '산 속 마왕의 궁전'입니다. 그 익숙한 선율의 원곡이 클래식이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페르귄트'에 나오는 ‘아침의 기분’, ‘아니트라의 춤’ 등도 많은 분들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페르귄트'는 1876년에 초연됐는데요. 하나의 작품에 들어간 음악 다수가 150여 년간 이어지고 사랑받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이 일을 해낸 주인공은 노르웨이 출신의 음악가 에드바르드 그리그(1843~1907)입니다.
그리그의 이름은 잘 알아도, 그의 작품들은 선뜻 떠오르지 않곤 하는데요. 하지만 그의 음악 중엔 '페르귄트' 수록곡들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이런 그는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키고도 "나는 너무도 모자란 작곡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뛰어난 실력에 겸손의 미덕까지 갖췄던 그리그의 삶과 작품 세계로 떠나보겠습니다.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항구 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시인이자 음악가였습니다. 덕분에 그리그는 어릴 때부터 풍족한 생활을 하며 음악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재능도 특출났죠.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그는 5~6세 때 이미 능숙한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훗날 그리그가 쓴 일기엔 6살 때를 회고하며 이런 말을 적어놓은 부분이 나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더라면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을 '모자란 작곡가'라고 표현했던 것도 그렇고, 6살 이라는 어린 나이에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걸 후회했던 걸 보면 그는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16살이 되었을 때 집을 방문했던 노르웨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오울 볼은 그리그의 연주를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가 작곡했던 곡들도 듣고 감탄했죠. 그리고 볼은 그리그에게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가길 권했습니다.
그렇게 그리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됐는데요. 음악원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딱딱한 분위기와 어려운 과제로 그리그는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게다가 향수병과 만성 폐질환까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다시 떠났습니다. 당시 북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코펜하겐이었기 때문인데요. 그는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고국인 노르웨이의 민족 음악에 빠지게 됐습니다.
코펜하겐에 있던 노르웨이 작곡가 리카르 노르드라크와 가까워진 영향이 컸습니다. 노르드라크는 지금의 노르웨이 국가를 만든 인물이죠. 그리그는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노르웨이 춤곡과 민속 민요 등을 공부하며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25살이 되던 1868년 '피아노 협주곡'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노르웨이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음악가가 되어 있었는데요. 피아노 협주곡으로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게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곡은 '페르귄트' 모음곡들과 함께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강렬한 도입부부터 시작해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따뜻하고 감미로운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헝가리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도 "이 곡이야말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혼이다"라고 극찬했죠.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 E. 스텐-뇌클베리 역시 "무거운 중앙 유럽의 낭만주의와 달리 북유럽의 서정성을 띠고 있다"라며 "따스하고 밝으면서도, 장중하고 민족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그는 31살이 되던 1874년엔 색다른 제안을 받았습니다. '인형의 집' '사회의 기둥' 등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으로부터 연극 '페르귄트'의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겁니다. 노르웨이 민속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그리그가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을 것만 같은데요.
오히려 그리그는 요청을 받고 많이 망설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감성적인 음악 스타일과 극음악이 잘 맞지 않아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거죠. 그럼에도 고민 끝에 가까스로 요청을 받아들여,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치열하게 23개의 곡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기적 같은 일들이 찾아오는 법일까요. 1876년 크리스티아니아 왕립 극장에서 열린 '페르귄트'의 초연은 대성공을 이뤘고, 그해에만 36회에 걸쳐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그의 음악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리그는 정부로부터 매년 1600크로나를 지원받는 종신 연금 수령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페르귄트'의 내용은 꽤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은 몰락한 지주의 아들 페르귄트입니다. 그는 공상에 빠진 채 돈과 쾌락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큰 돈을 모았다가 누군가에게 빼앗기길 반복하죠. 또 연인 솔베이그는 버린 채 산속 마왕의 딸, 추장의 딸 아니트라 등을 차례로 만나고 다시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늙고 지쳐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오는데요. 오는 길엔 배가 난파해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어렵게 도착한 고향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다름 아닌 백발이 된 솔베이그였습니다. 솔베이그는 오랜 세월 그곳에 머물며 페르귄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거죠. 페르귄트는 솔베이그의 무릎 위에서 숨을 거두며 "그대의 사랑이 날 구원해 주었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흐르는 곡이 '솔베이그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 음악엔 솔베이그의 깊은 슬픔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죠.
'페르귄트'의 성공 이후 그리그의 건강은 악화되어 갔는데요. 유학 때 얻은 폐질환의 여파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습니다.
여행 중 러시아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를 만나기도 했죠. 차이코프스키는 “그리그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성을 음표로 표현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64세가 되던 해 미국에서 4개월간 연주회를 이어가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겸손, 열정을 모두 움켜쥐고 최선을 다했던 그리그.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그의 명곡들이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