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화장률 20년 만에 80% 육박…세대 갈등·코로나19 영향
"조상을 모시는 형식 바뀔지언정 마음만은 이어지길"

제주의 화장률이 80%에 육박했다.

20년 전 2001년 16.1%와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다시! 제주문화] (29)"세상이 변했다" 제주 장묘·벌초 문화 바뀌어
전통적으로 매장문화가 강한 제주지만, 핵가족화·세대 갈등·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여러 가지 사회현상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변화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돌 틈에서 나고 자라서 돌 틈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점차 옛말이 되고 있다.

◇ 10%대 화장률 20년만에 80% 육박
코로나19 확산이 다소 주춤했던 지난 2020년 6월 초 A씨 문중 후손들이 이른 새벽부터 제주의 한 묘소에 모였다.

윤달을 맞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조상 묘를 자연장지로 모시기 위함이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이장을 한다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어렵다는 의견이 모였다.

과거에는 흔히 '묫자리가 나빠 집안에 우환이 닥친다'는 등 이유로 이장을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조상 묘 관리의 어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아졌다.

A씨 문중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준비한 과일과 술 등 제물로 정성스럽게 제를 올리고 난 뒤 파묘, 유골수습, 입관, 화장장 운구, 화장 등 모든 작업을 하루에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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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2017년에 이어 3년 만에 돌아온 윤달의 해였다.

윤달은 날짜상의 계절과 실제 계절이 어긋나는 것을 막고자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달을 말한다.

예로부터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에 대한 감시를 쉬는 때로 부정(不淨)과 액(厄)이 끼지 않는 달로 여겼다.

궂은 일을 해도 탈이 없는 달(썩은 달)이므로 이 기간 조상 묘지를 개장하거나 보수하는 경우가 많다.

개장은 매장한 시신이나 유골을 다른 분묘로 옮기거나 봉안(奉安, 시신을 화장해 유골의 골분을 그릇이나 봉안당에 모심) 또는 자연장(自然葬, 골분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 하는 것을 말한다.

덩달아 제주의 유일한 도립 화장시설인 양지공원도 바빠졌다.

제주도에 따르면 2020년 윤달 기간(5월 23일부터 6월 20일까지) 개장유골 화장은 총 2천704구로, 3년 전인 2017년 윤달(6월 24일부터 7월 22일)의 1천811구보다 49.3% 증가했다.

양지공원은 당시 특별 근무조를 편성해 개장유골 화장 예약을 평상시 1일 30구에서 최대한도인 100구로 확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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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예약하지 못한 문중에서는 윤달 기간이 아니더라도 윤달이 낀 해에 좋은 날을 받아 이장하기도 했다.

2020년 한해에만 총 1만2천723구(시신 3만44구, 개장유골 8천679구)의 화장이 이뤄졌다.

매장이 아닌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전국 최하위의 화장률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제주의 화장률은 지난 2001년 16.1%에서 10년 뒤 2011년 54.8%를 기록,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이어 2014년 63.5%, 2018년 73.4%, 2020년 77.8%로 증가했다.

2021년의 경우 아직 정확한 통계치가 나오지 않았지만 2%가량 증가해 8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평균 89.9%에 미치지 못하는 가장 낮은 수치지만, 전통적으로 매장관습을 고집해오던 제주의 장묘문화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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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갈등·코로나19 속에 변화하는 장묘문화
제주 장묘문화의 변화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 현상과 맞물려 있다.

매장으로 인한 국토 잠식이 날로 심각해지자 2000년대 들어 정부는 장묘문화 개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전국적으로 해마다 여의도의 1.2배에 달하는 국토가 묘지로 잠식당하는 등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졌다.

제주만 하더라도 1999년 기준 묘지 면적은 우도 면적의 2.7배 달하는 1천686만2천여㎡(34만6천여기)로, 연간 3천기의 묘지가 새로 늘어났다.

결국 2001년 분묘의 사용기한을 최장 60년으로 제한, 그 이후에는 반드시 분묘를 개장해 화장 또는 봉안하도록 한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이어 전국적으로 범시민 화장 유언 서약 운동이 벌어졌고 화장시설이 확충됐다.

2002년 5월 제주에 화장과 봉안시설을 겸비한 현대식 종합 장사시설인 양지공원이 만들어진 데 이어 2012년에는 제주시 무연고묘역을 재개발한 친환경 자연장지인 한울누리공원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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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주의 독특한 벌초문화로 인한 세대 간, 가족 간 갈등도 엿보인다.

제주에서는 추석을 보름 앞둔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가족·문중별로 대대적인 '벌초행사'를 진행해왔다.

제주어로 '식개 안 한 건 놈이 모르고, 소분(掃墳) 안 한 건 놈이 안다'(제사를 지내지 않은 건 남이 모르지만, 벌초하지 않은 것은 남이 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이웃과 친척들의 시선을 의식해 객지로 떠난 가족들까지 때가 되면 제주로 돌아와 벌초 행렬에 참여해야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전통은 희미해져 갔다.

바빠진 일상 탓에 문중벌초에 참여하는 인원이 줄어들었고, 제주에 남아있는 가족만으로는 수많은 조상묘를 관리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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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최근 2년간 전국적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마저 확산했다.

결국 자연스럽게 여러 지역에 흩어진 조상묘를 한곳으로 모아 이장하고, 벌초를 대행해주는 민간 개별업체의 벌초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족들이 늘어났다.

김형규 제주도 보건복지여성국 양지공원팀장은 "화장 및 봉안시설 이용이 많이 늘어나면서 이제 10명 중 8명이 화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핵가족화 시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토지를 구입해 가족 묘지를 만들기 쉽지 않고,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어 묘를 관리하기 어려운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 장묘문화가 변화하면서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돌 틈에서 나고 자라서 돌 틈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점차 옛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도 갈등은 현재 진행 중이다.

조상묘의 이장을 놓고 고민하는 B(84)씨는 "명절 때마다 벌초 문제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혹여나 집안에 우환이라도 생기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걱정에 여전히 결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우리가 죽고 세대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 (조상을 모시는) 형식이 바뀔지언정 마음만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