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색채의 반추상 산수화
간결함·여백미에 현대적 감각까지
'마음의 달' '녹색산' 등 20여점
갤러리나우, 내달 5일까지 전시
류 작가의 그림은 일종의 반추상화다. 풍요와 행복을 상징하는 보름달이 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다. 아크릴 물감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색조를 보면 동양화보다는 서양화에 가깝다. 노란색과 비현실적인 색채를 띤 산의 대비, 삼각형으로 단순화된 산자락에서 유영국의 ‘산’ 연작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간결하면서도 수묵화 특유의 기세가 살아 있는 산자락 표현을 보면 지난 30여 년간 쉼 없이 산수화를 그려온 작가의 역량을 체감할 수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뒤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전국 산하를 다니며 정통 수묵산수화를 그렸어요. 내공은 쌓였지만 동료들과 비슷한 장소에서 그리다 보니 구도를 차별화하기가 어렵더군요. 저만의 작품을 하고 싶어서 10여 년 전 무작정 밤중에 혼자 산에 올라갔어요. 달 아래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밤을 새우다가 여명이 밝아오는데, 어느 순간 하늘이 보라색이 되고 먼 산자락 끝에 붉은 기운이 돌더니 온 세상이 밝아지는 광경에서 강렬한 감동을 느꼈어요. 그 감동을 그림으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류 작가는 이후 전통적인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산과 물, 하늘과 달 등 자연물을 다양한 색과 기법으로 표현해 왔다. 이번 전시에 나온 20여 점의 신작 중 대표작은 가로 2.12m, 세로 2.5m의 대작 ‘마음의 달’이다. 거대한 황금빛 달이 검보라빛 하늘에 떠 있고, 먹으로 그린 산자락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을 밝은 보라색으로 칠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국화가 갖고 있는 빈 공간의 멋을 살리되 산의 안쪽에 여백을 둬 동양화와 서양 추상화의 매력을 겸비했다.
‘달빛’과 ‘월하’에서는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표현한 물과 하늘의 서정적인 색조를, ‘달빛메아리’에서는 세 개의 달이 밤을 밝히는 몽환적인 모습을 동양화의 섬세한 필치로 감상할 수 있다. 한지의 물성을 이용한 달무리 표현이 특히 빼어나다. ‘녹색 산’ ‘붉은 산’ ‘초록 산’ ‘푸른 산’ 등 산 연작은 여러 색의 산과 달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게 그려낸 그림들이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로 분류되지만 현대적인 감각 덕분에 젊은 세대에게 특히 인기다. 류 작가가 신기술 접목에 적극적인 것도 이런 인기에 한몫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수묵화 작품에 LED(발광다이오드) 조명과 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매체를 접목한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그의 수묵화 ‘월하2021’를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만든 200점이 경매 시작 10초 만에 모두 팔려 화제를 모았다.
류 작가는 “황금빛 달이 코로나19 등으로 힘든 이들에게 행복과 위안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달 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