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의 행정과 데이터과학] 예산에 대한 '심리적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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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율 낮아도 절대 규모 엄청난 증가 초래
비납세자는 과소평가·정치인은 무감각 우려
'미래세대 부담' 14조 무게 똑바로 인식해야
고길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비납세자는 과소평가·정치인은 무감각 우려
'미래세대 부담' 14조 무게 똑바로 인식해야
고길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숫자는 상대적이다. 행정학에서 데이터 과학을 가르칠 때도 이 점을 자주 강조한다. 등록금을 스스로 벌어 충당하는 학생에게 4000원짜리 커피 한 잔은 생존을 위한 한 끼 식사와 비교되지만, 부유한 학생에게는 커피 한 잔의 여유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숫자로 표현된 돈의 가치는 주관적이다. 따라서 돈에 대한 심리적 착시가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6·25전쟁 이후 최초라는 1월 추가경정예산안이 추진된 후, 이달 9일 정부가 요청한 14조원의 추경은 국회 상임위 증액으로 54조원이 됐고, 19일 일단 14조원 규모로 예결위를 통과했다. 그런데 14조원의 무게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예산에 대한 심리적 착시는 다양하다. 첫 번째는 비례의 착시다. 예산 증가 비율이 낮으면 절대적 규모도 적게 증가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복지사업 예산을 매년 10%씩 늘리면 10년 후에는 약 2.4배, 20년 후에는 6.1배로 규모가 커지게 된다. 흔히 ‘복리의 마술’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아주 작은 비례적 증가도 시간에 따라 그 양이 누적되면 상당히 큰 절대적 증가를 초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2년 중앙정부의 총지출 규모는 약 325조원이었다. 2022년 예산 규모는 약 608조원이고, 앞으로 편성될 추경예산까지 고려하면 두 배 정도의 증가다. 하지만 절대 금액으로 계산하면 300조원 가까운 엄청난 돈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착시는 비용 과소 인식의 오류다. 정부의 예산 씀씀이에 대해 납세자와 비납세자가 느끼는 비용 인식은 전혀 다르다. 정부가 세금이나 지출을 늘려도 비납세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예산 증가가 항상 반갑지만은 않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은 한국의 면세자는 38.9%로 미국(30.7%)과 호주(15.8%), 캐나다(17.8%), 영국(6% 미만)보다 높다. 납세자의 세 부담 쏠림 현상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소득 상위 10%가 소득세의 86.4%를 냈으며, 법인세는 상위 1%가 74%를 부담했다.
즉,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정부 지출의 혜택을 보기 때문에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혹자는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 문제다. 자본은 시장에서 돌고 돌며 부가가치를 생산한다. 그런데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1000원이 세금으로 사용되면 결국 유능한 기업가와 상인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줄게 된다. 재정학에서는 이를 ‘한계 조세 초과부담’이라고 부른다. 이 비효율의 크기는 세금의 유형이나 계산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1000원당 230~640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의 부가가치 창출 기회를 박탈한 세금 납부는 사회 전체의 후생을 감소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세 번째는 금액 크기의 착시다. 요즘은 조(兆) 단위 규모의 예산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올해 기초연금 예산은 16조원이다. 65세 이상 인구의 70%가 혜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다. 최근 정치권이 주장했던 추경예산 54조원은 기초연금의 3.4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도로,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 사업에 사용하는 교통시설특별회계 규모가 15조원임을 감안할 때 추경 14조원은 보통 큰 예산이 아니다. 이렇게 큰 금액의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본예산이 통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추가 지출을 시도하는 정치인의 담대함에 놀랄 뿐이다.
넷째, 세대 간 착시효과다. 현세대를 위한 지출의 편익은 과대평가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은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2021년 본예산과 추경예산까지 종합한 관리재정수지를 살펴보면 126조6000억원가량의 적자가 났다. 2022년에는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심화, 저출산 및 지역균형개발, 국민연금 고갈, 통일비용 등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래세대에 엄청난 국가부채 부담을 떠넘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 예결위를 통과한 ‘14조’의 무게를 똑바로 인식할 때다. 정말 필요한 곳에 세금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신중한 정책 설계에 기반한 추경예산 지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코로나보다 더한 위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산에 대한 심리적 착시는 다양하다. 첫 번째는 비례의 착시다. 예산 증가 비율이 낮으면 절대적 규모도 적게 증가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복지사업 예산을 매년 10%씩 늘리면 10년 후에는 약 2.4배, 20년 후에는 6.1배로 규모가 커지게 된다. 흔히 ‘복리의 마술’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아주 작은 비례적 증가도 시간에 따라 그 양이 누적되면 상당히 큰 절대적 증가를 초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2년 중앙정부의 총지출 규모는 약 325조원이었다. 2022년 예산 규모는 약 608조원이고, 앞으로 편성될 추경예산까지 고려하면 두 배 정도의 증가다. 하지만 절대 금액으로 계산하면 300조원 가까운 엄청난 돈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착시는 비용 과소 인식의 오류다. 정부의 예산 씀씀이에 대해 납세자와 비납세자가 느끼는 비용 인식은 전혀 다르다. 정부가 세금이나 지출을 늘려도 비납세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예산 증가가 항상 반갑지만은 않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은 한국의 면세자는 38.9%로 미국(30.7%)과 호주(15.8%), 캐나다(17.8%), 영국(6% 미만)보다 높다. 납세자의 세 부담 쏠림 현상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소득 상위 10%가 소득세의 86.4%를 냈으며, 법인세는 상위 1%가 74%를 부담했다.
즉,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정부 지출의 혜택을 보기 때문에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혹자는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 문제다. 자본은 시장에서 돌고 돌며 부가가치를 생산한다. 그런데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1000원이 세금으로 사용되면 결국 유능한 기업가와 상인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줄게 된다. 재정학에서는 이를 ‘한계 조세 초과부담’이라고 부른다. 이 비효율의 크기는 세금의 유형이나 계산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1000원당 230~640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의 부가가치 창출 기회를 박탈한 세금 납부는 사회 전체의 후생을 감소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세 번째는 금액 크기의 착시다. 요즘은 조(兆) 단위 규모의 예산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올해 기초연금 예산은 16조원이다. 65세 이상 인구의 70%가 혜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다. 최근 정치권이 주장했던 추경예산 54조원은 기초연금의 3.4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도로,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 사업에 사용하는 교통시설특별회계 규모가 15조원임을 감안할 때 추경 14조원은 보통 큰 예산이 아니다. 이렇게 큰 금액의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본예산이 통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추가 지출을 시도하는 정치인의 담대함에 놀랄 뿐이다.
넷째, 세대 간 착시효과다. 현세대를 위한 지출의 편익은 과대평가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은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2021년 본예산과 추경예산까지 종합한 관리재정수지를 살펴보면 126조6000억원가량의 적자가 났다. 2022년에는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심화, 저출산 및 지역균형개발, 국민연금 고갈, 통일비용 등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래세대에 엄청난 국가부채 부담을 떠넘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 예결위를 통과한 ‘14조’의 무게를 똑바로 인식할 때다. 정말 필요한 곳에 세금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신중한 정책 설계에 기반한 추경예산 지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코로나보다 더한 위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