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예방의 세 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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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 우리의 일터는 얼마나 안전해졌을까?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은 갈 길이 먼 것만 같다. 최고경영자 처벌 위협에 직면한 기업들이 중대재해 예방에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화학공장, 제철소, 건설현장, 채석장 등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매일 2~3명꼴로 사망재해가 발생하던 것이 새 법이 시행되었다고 갑자기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귀한 목숨을 지켜야 할 터이다.
중대재해법은 일터에서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리상 논란거리가 적지 않지만 경영책임자에 대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상의 벌금이라는 강력한 처벌 규정이 없었다면 과연 기업들이 지금처럼 안전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 과연 획기적으로 재해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범 내려온다”라는 우리 가락은 흥겹지만 실제로 호랑이가 나타나면 우선 숨는 것이 상책이다. 분노와 보복적 처벌만으로 재해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처벌 1호는 되지 말자"며 작업을 중지하는 사례에서 보듯이 일시적 회피 효과는 있을지언정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재해는 필연적으로 재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대재해법을 계기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중대재해법은 무서운 처벌법이 아니라 재해 예방을 위해 지킬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한다. 사업주가 단지 처벌을 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면 이 법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정부는 경영책임자가 구성원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특히 사업주의 의무사항과 면책요건을 명확히 해야 경영책임자들이 방패 뒤로 숨지 않고 안전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다. 당장 법을 바꾸기 어렵다면 면책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소규모 사업주에게 대기업과 똑같은 수준의 안전확보 의무 이행을 스스로 알아서 해내라고 강제하는 것도 무리다. 안전보건진단과 보완조치, 법률자문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어야 한다. 업종별 단체가 전문기관과 협조해서 지원 역할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둘째, 중대재해 원인 조사체계를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명의(名醫)의 첫 번째 요건은 정확한 진단이다. 재해 원인을 과학적으로 조사 분석해서 결과를 당사자와 전문가 등에게 공개하고, 제도개선과 대책에도 반영해야 재해가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매년 800건 이상의 중대재해조사 보고서가 작성되었지만 같은 재해가 반복되고 있다. 재해예방에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행 산업재해 조사체계는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근로감독관이 법령 위반사항 중심으로 원인조사를 한다. 안전보건공단의 중앙사고조사단에서 지원하고 있으나 충분한 전문인력이 투입되지 않는다. 2019년 통계를 보면 중대재해조사 참여 인원은 80% 이상이 2~3명에 불과했고, 조사기간도 3일 이내가 90% 이상이었다.
2020년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 보고서의 질적 제고를 위한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보고서의 재해 원인과 대책 내용은 '정말 단순하고 명료하게' 형식적으로 작성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사자 의견이 상세하게 제시되는 경우 재판 시 다툼의 소지로 작용될 수 있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공철도사고 조사기구 등의 사례를 참고하여 법령을 보완하고 독립적인 산업재해조사 전문기관을 설치해야 한다. 원인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소모적인 대립과 사회적 갈등도 방지할 수 있다.
셋째, 노사정은 안전 기준이 현장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간 발생했던 산업재해의 대다수는 부실한 안전설비, 유명무실한 관리감독, 공기 압박과 돌관작업, 규정을 위반한 자재 사용과 공정 진행, 불법 재하도급, 근무수칙 위반 등 인재에서 비롯되었다. 떨어짐, 물체에 맞음, 넘어짐 등 3대 다발사고 요인은 노사의 안전실천을 통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공사를 외국에서 하면 사고가 안 나는데 국내에서는 재해가 빈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에 관한 한 노사정은 상호감시자이자 공동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근로감독관 인력 운용도 임금체불 청산에서 안전업무 우선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을 자처하기에 앞서 일터에서의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노사정의 비상한 각오와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
임무송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서강대 대우교수
중대재해법은 일터에서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리상 논란거리가 적지 않지만 경영책임자에 대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상의 벌금이라는 강력한 처벌 규정이 없었다면 과연 기업들이 지금처럼 안전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 과연 획기적으로 재해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범 내려온다”라는 우리 가락은 흥겹지만 실제로 호랑이가 나타나면 우선 숨는 것이 상책이다. 분노와 보복적 처벌만으로 재해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처벌 1호는 되지 말자"며 작업을 중지하는 사례에서 보듯이 일시적 회피 효과는 있을지언정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재해는 필연적으로 재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대재해법을 계기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중대재해법은 무서운 처벌법이 아니라 재해 예방을 위해 지킬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한다. 사업주가 단지 처벌을 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면 이 법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정부는 경영책임자가 구성원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특히 사업주의 의무사항과 면책요건을 명확히 해야 경영책임자들이 방패 뒤로 숨지 않고 안전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다. 당장 법을 바꾸기 어렵다면 면책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소규모 사업주에게 대기업과 똑같은 수준의 안전확보 의무 이행을 스스로 알아서 해내라고 강제하는 것도 무리다. 안전보건진단과 보완조치, 법률자문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어야 한다. 업종별 단체가 전문기관과 협조해서 지원 역할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둘째, 중대재해 원인 조사체계를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명의(名醫)의 첫 번째 요건은 정확한 진단이다. 재해 원인을 과학적으로 조사 분석해서 결과를 당사자와 전문가 등에게 공개하고, 제도개선과 대책에도 반영해야 재해가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매년 800건 이상의 중대재해조사 보고서가 작성되었지만 같은 재해가 반복되고 있다. 재해예방에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행 산업재해 조사체계는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근로감독관이 법령 위반사항 중심으로 원인조사를 한다. 안전보건공단의 중앙사고조사단에서 지원하고 있으나 충분한 전문인력이 투입되지 않는다. 2019년 통계를 보면 중대재해조사 참여 인원은 80% 이상이 2~3명에 불과했고, 조사기간도 3일 이내가 90% 이상이었다.
2020년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 보고서의 질적 제고를 위한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보고서의 재해 원인과 대책 내용은 '정말 단순하고 명료하게' 형식적으로 작성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사자 의견이 상세하게 제시되는 경우 재판 시 다툼의 소지로 작용될 수 있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공철도사고 조사기구 등의 사례를 참고하여 법령을 보완하고 독립적인 산업재해조사 전문기관을 설치해야 한다. 원인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소모적인 대립과 사회적 갈등도 방지할 수 있다.
셋째, 노사정은 안전 기준이 현장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간 발생했던 산업재해의 대다수는 부실한 안전설비, 유명무실한 관리감독, 공기 압박과 돌관작업, 규정을 위반한 자재 사용과 공정 진행, 불법 재하도급, 근무수칙 위반 등 인재에서 비롯되었다. 떨어짐, 물체에 맞음, 넘어짐 등 3대 다발사고 요인은 노사의 안전실천을 통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공사를 외국에서 하면 사고가 안 나는데 국내에서는 재해가 빈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에 관한 한 노사정은 상호감시자이자 공동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근로감독관 인력 운용도 임금체불 청산에서 안전업무 우선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을 자처하기에 앞서 일터에서의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노사정의 비상한 각오와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
임무송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서강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