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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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박모씨는 한 달 전 급하게 갈아탄 종신보험 상품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 보험사 설계사로 일하는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약 15년간 꼬박 보험료를 납부해 온 기존 종신보험보다 더 나은 상품이라는 설명에 보험을 변경했다는 박씨는 최근 딸아이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보험 약관에 따르면 기존 보험 상품의 월 보험료가 더 저렴할 뿐만 아니라 특약과 보장금 규모도 더 좋았다는 겁니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는 박씨는 자신의 무지로 손해를 봤다는 생각에 하루도 편히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뒤늦은 후회로 해지한 보험을 다시 가입할 방법을 찾던 박씨는 젊고 건강할 때 가입한 특약으로 나이가 들고 질병도 있는 지금 다시 가입할 수 없는 특약이라는 보험사 설명에 힘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억을 곱씹던 박씨는 문득 보험 설계사 친구가 자신에게 전화로 새 보험 상품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은 뒤 대리 서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보험을 하나라도 들고 있다면 설계사로부터 다른 보험 상품의 가입을 권유받은 경험 한 번씩은 있을 겁니다. 물론 기존 보험 상품보다 새로운 상품의 특약과 보장 규모가 더 좋고 월 보험료가 낮을 경우 보험을 갈아타는 것이 계약자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 과거에 판매한 보험 상품이 최근 판매하는 상품보다 예정이율이 높습니다. 따라서 보험료가 저렴하고 젊을 때 적용받을 수 있는 특약이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험을 갈아탔을 때 입을 손해가 더 클 수 있습니다.

특히 설계사가 새로운 상품 가입을 권유할 경우 실적과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갈아타기의 경우에는 상품 간 차이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보험업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보험 상품 모집 행위, 이른바 '승환계약'의 덫에 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승환계약이란 보험회사나 모집종사자가 보험계약자의 기존 보험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키고 새로운 보험계약을 청약하도록 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승환계약은 보험계약 중도해약에 따른 금전손실, 새로운 계약에 따른 면책기간 신규개시 등 보험계약자에게 부당한 손실을 입힐 우려가 있어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보험업법에서는 승환계약을 크게 2가지 경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보험업법 제97조 제3항 제1호에 따르면 '1개월 이내의 보험계약 전환 과정에서 보험계약자가 손해 발생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증명되지 않는 경우'를 승환계약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본인 의사에 따른 행위임이 명백히 증명되는 사례에는 승환계약 예외사항을 둔 것입니다. 보험계약자가 기존 보험계약 소멸 후 새로운 보험계약 체결 시 손해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자필로 서명하는 등입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 본인 의사 증명 방법은 4가지입니다. △(전자서명 포함)서명 △기명날인 △녹취 △금융위원회 기준을 준수하는 수단을 활용해 보험계약자 본인의 의사에 따른 행위임을 명백히 증명하는 방법 등입니다. 아울러 보험업법 제97조 제3항 제2호에서는 '6개월 이내의 보험계약 전환 과정에서 보험계약자에게 기존 보험계약과 새로운 보험계약의 보험기간 및 예정 이자율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한 사항을 비교하여 알리지 아니한 경우'를 승환계약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승환계약에서 새로운 보험계약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기존 보험계약과 보장 내용 등이 비슷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피보험자가 동일인인 동시에 위험보장의 범위가 생명보험상품, 손해보험상품, 제3보험상품의 구분에 따라 유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면 보험계약자는 기존 계약 소멸 일자부터 6개월 이내에 기존 계약의 부활과 승환계약의 취소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부활의 청구를 받은 보험회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소멸된 보험계약의 부활을 승낙해야 합니다. 이는 보험업법 제97조 제4항과 제5항에 규정된 조항입니다. 보험업법에서는 부당한 승환계약이 적발될 경우 해당 보험회사 및 모집종사자에 대해 과징금 및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앞선 사례인 박씨의 경우 승환계약 취소 및 기존 보험계약 부활 신청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계약과 새 계약의 피보험자가 동일하고, 위험 보장 범위가 유사하며, 기존 계약 소멸 일자부터 약 1개월이 지난 시점이란 면에서 기본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설계사의 대리 서명으로 본인 의사 증명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런 만큼 승환계약이 인정되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단, 승환계약을 한 보험회사와 기존 계약의 보험회사가 다르다면 새로 가입한 보험회사에서 법률상 금지된 승환계약임을 인정한 근거가 있어야 기존 보험 회사에서 부활 신청이 승인될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통 청약서 뒤에 상품 비교 안내 확인서가 있는데, 이에 직접 서명할 경우 상품 간 차이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 하더라도 승환계약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설계사가 대리 서명을 한 경우 또는 설계사가 상품에 대해 잘못 설명하는 내용을 녹취한 경우엔 부당 승환계약으로 적발될 수 있다. 계약자는 보험 변경 시 상품 간 비교를 거쳐 유불리를 따진 이후에 본인이 직접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 내용은 특정 사례에 따른 것으로, 실제 민원에 대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