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청년들 기회 늘리는 정치' 판별법
‘빛의 혁명’으로 불리는 LED(발광다이오드)산업이 꽃피게 한 주역은 일본인 나카무라 슈지(67)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청색 LED를 1993년 개발해 ‘친환경 고효율’ LED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 그전까지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두 가지 LED만 존재해 여러 가지 색을 낼 수 없었다. 나카무라가 청색 LED를 개발한 덕분에 노랑·빨강·파랑의 3원색을 활용해 모든 색의 LED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나카무라가 그 공로로 노벨물리학상(2014년)까지 받게 된 것은 꿈을 품고 달려간 청년 시절의 치열한 도전 덕분이었다. 지방대학(도쿠시마대 전자공학과)을 졸업해 향토기업 니치아화학에 입사한 그는 청색 LED 개발을 도전 목표로 세웠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매일 새벽 출근해 밤늦게까지 실험에 몰두했다. 막판 4년 동안에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연구개발에만 매달렸다. “눈만 뜨면 회사로 달려나가 일을 했다”는 게 그의 회고다. 니치아화학은 그가 개발해낸 청색 LED를 제품화한 덕분에 세계적 소재·부품회사로 날아올랐고, 일본 젊은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일자리를 많이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는 나카무라와 같은 ‘열정 청년’을 배출할 수 없다.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한 제도 때문이다. 직원이 규정을 초과해 근무했다가는 사업주가 최고 징역 2년의 처벌을 받는다(근로기준법 110조). “해당 직원을 출입금지하고 연구실 전기를 끊어서라도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카무라처럼 LED산업을 일으키는 청년과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됐다.”(최성락, 《대한민국 규제 백과》)

문재인 정부가 4년 전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며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한 이후 한국 기업들의 활력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다. 오랜 절치부심 끝에 세계 1위 경쟁력을 되찾고도 날벼락을 맞은 조선업계의 요즘 상황이 단적인 예다. 중국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각지로부터 대규모 선박 건조 주문을 잇달아 따내고 있지만 일손을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생산직원들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예전만큼의 수입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택배 알바가 낫다”며 떠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급여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근로자를 과잉노동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제한장치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를 기업들도 모르지 않는다. 제도 설계자들의 ‘탁상 위 생각’과 현실이 다른 게 문제다. 집중적인 작업이 필요한 경우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적용해달라는 게 기업들의 호소다. 근로시간만이 아니다. 최저임금 졸속 인상 등 현 정부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쏟아낸 정책이 곳곳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는 일자리 확대는커녕 있는 일자리도 지키기 힘들어지는 게 당연하다. 작년 말 기준 전일제(하루 8시간 이상 근무) 일자리가 4년 전보다 209만 개 이상이나 줄었다는 통계(한국경제연구원)가 그 단면이다. 일자리 부족과 그로 인한 생활 불안정만큼 사람들의 삶을 괴롭고 팍팍하게 하는 것은 많지 않다. 요즘 계층·세대 간 갈등을 넘어 20대 청년층 남녀 간 질시와 반목까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된 배경이다. 한창 꿈을 키우고 열정을 불태워야 할 젊은이들이 ‘이대남’ ‘이대녀’로 갈라져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기에 이른 현실이 참담하다.

국정을 맡은 정부와 여당이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데도, 온갖 통계분식과 변명에 급급한 모습은 비겁하다. “청년세대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은 기회의 총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여당 대통령 후보의 진단이 그나마 눈길을 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엉뚱하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을 하겠다며 금세 바닥을 드러낼 ‘퍼주기’ 공약만 잔뜩 쏟아내고 있다. 엊그제 열린 대통령 후보 경제 분야 TV 토론에서도 청년세대의 ‘기회 총량’을 어떻게 늘려주겠다는 것인지, 제대로 된 처방을 들을 수 없었다. 정말 청년들에게 희망을 되찾아주겠다면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부터 처절하게 돌아봐야 한다. 잘못을 직시하고 바로잡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지성과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