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 상담사 김형준씨 "코인대박 좇다 나락…가족 있어 일어섰죠"
“제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자살 예방입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투자로 수억원을 잃으니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상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죠. 부끄럽지만 제가 어떻게 상실을 극복했는지 함께 나눠보려고 책을 썼습니다.”

김형준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연구원(사진)은 작년 초 암호화폐 투자로 쓴맛을 봤다. 무턱대고 알트코인에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정신건강 상담이 본업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고,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투자 실패담을 엮어낸 《심리학자가 투자 실패로 한강 가기 직전 깨달은 손실로부터의 자유》를 펴냈다. 심리학 전문가로서 숨기고 싶을 법한 이야기지만 거리낌 없이 풀어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김 연구원은 “누구나 투자에 뛰어드는 시대인 만큼 마음속 손실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이 처음부터 암호화폐에 큰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2017년 코인 광풍이 불 때도 큰 동요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치면서 그도 어느샌가 ‘대박’의 꿈을 좇기 시작했다. 투자금의 절반을 날리고 혼자서 끙끙 앓다 겨우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고서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김 연구원은 “손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는 ‘부인-분노-협상-우울-수용’ 5단계를 거쳐 죽음을 수용한다고 설명한다. 투자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손실 자체를 부정하다 이내 감정이 어지러워지는 단계에 들어서면 일상에까지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손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종일 암호화폐거래소 매매 창을 띄워놓는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손해를 봤을 때 손절매해야 한다는 건 투자의 기초 상식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알면서도 미련이나 막연한 기대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손절매를 하더라도 남아 있는 분노, 좌절 등의 감정으로 일상 복귀가 어려운 일도 잦다. 마음속 감정을 ‘손절’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을 객관화하라”고 조언한다.

“투자 실패에 집착했을 때 저 자신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이 수치심이 저를 옭아맸죠. 하지만 제가 애초에 투자를 하려고 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결국은 ‘가족의 행복’이었습니다. 직장도, 가족도 남아 있으니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최근 암호화폐와 주식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투자 실패로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김 연구원 역시 자신과 비슷한 사례를 종종 본다고 말한다. 그는 “애초에 투자하려 한 이유를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행복을 회복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