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코로나 사태로 펼쳐진 뉴노멀의 세상으로 자본과 사람이 옮겨가면서 비즈니스 역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여태까지 맞닥뜨렸던 변혁과 차원이 다른, 사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하는 ‘사업 리셋’ 시기가 펼쳐지고 있다. 지금 최고경영자(CEO) 앞에는 재편되는 가치사슬 상에서 자사를 어느 곳에 위치시켜야 할 것인지가 적혀 있는 선택지가 있다. 시장을 좌우하는 솔루션과 플랫폼을 보유한 가치통합업체가 될 것인가, 하드웨어 전문업체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친환경 등 차세대 유망서비스업체로 변신할 것인가 등등.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기존의 성공을 가져온 사업 방식을 버리는 ‘사즉필생(捨則必生)’의 자세에서 빨리 선택 결정하고, 실행할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비즈니스 역동성 확대로 대변혁 예고

지금 전 세계의 자본과 인력이 새로운 엘도라도를 찾아 대이동하고 있다. 작년 전 세계 기업의 자금 조달 규모는 2019년의 약 네 배나 됐고,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기록도 다시 써지고 있다. ‘대퇴사(great resignation)’ 시대라고 규정될 정도로 사람들은 자신에 맞는 업무를 찾아 스스로 이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팬데믹이 바꾼 비즈니스 판…CEO의 달라진 선택지 [이장균이 본 비즈니스 변혁 세상]
핵심 경영 자원인 자본과 인재 이동 심화는 곧 혁신을 일으킬 잠재력 확충을 의미한다. 확대되는 비즈니스 역동성은 이들이 몰리는 정보통신기술(ICT)과 그린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벤처업체와 여태 시장을 장악해온 전통업체 간 흥미진진하면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의 서막을 열고 있다. 사업 가치사슬 즉 최종 소비자에게 제안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여러 기업이 참여해 행해지는 구매, 제조, 판매, 애프터서비스(AS) 등의 사업 활동으로 이어져 있는 사슬이 비즈니스 역동성에 자극받아 분화 또는 통합하는 재편 양상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CEO 책상 위에는 팬데믹 상황에 대처하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재편되는 사업 가치사슬에서 미래에 우리 회사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 적힌 선택지가 놓여 있다. CEO여, 어느 길로 가시겠습니까?

공급망 변혁이 가치사슬 체계의 변동 초래

가치사슬 체계를 요동치게 만든 요인은 무엇보다 공급망 변혁이다. 팬데믹으로 물자와 사람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공급망이 그야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장기간 구축해 온 기업의 생명줄인 공급망이 코로나 이동 제한 조치(lockdown), 미·중 간 경제 마찰, 물류난 등 다양한 요인으로 아주 불안정해졌다. 코로나 발발 초기에 터진 자동차의 와이어링 하네스, 마스크를 비롯해 작년의 요소수에 이르기까지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해외 아웃소싱에 크게 의존했던 보잘것(?)없는 상품들이 오히려 완성품 생산까지 중단시키면서 꼬리가 몸통을 세게 흔드는 채찍(bullwhip) 효과까지 낳았다. 안정적인 공급을 보증할 수 있도록 ‘우리 나라, 우리 기업’이 생산하는 공급망 복원 전략이 핵심 사안이 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CEO 전략서에서 전략 옵션인 오프쇼어링, 아웃소싱이 지워졌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더욱 점점 거세지고 있는 디지털 변혁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추세도 개별 기업을 벗어나 전체 공급망의 통합 관리를 강조하면서 공급망 변혁을 재촉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에 ‘효율성’을 중점 기준으로 구축해 왔던 공급망에서 벗어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사람, 물자의 이동 제한 사태에서도 정상 작동하는 ‘안정적이면서 착한’ 공급망이 필요하다. 기업은 모든 경영 자원의 통제가 가능하고, 고객 접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영 활동과 사업 파트너, 고객과 항상 연결돼 사업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연결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ACBM: Always-Connected Business Model)’ 구축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를 구현하고 성숙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가치사슬 체계는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쪼개거나 반대로 통합하는 현상이 진행될 것이다. 지금 애플이 애플카를 만들기 위해 생산을 담당할 해외 업체 물색에 나서고 있는 사례처럼 제품 개발과 생산이 분리되는 가치사슬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전통업체들은 공급망 전체의 관리 수준을 고도화하는 한편 핵심 부품의 생산을 내재화하거나 디지털 기술 업체를 M&A하면서 가치사슬 통합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 변혁으로 점점 제조 현장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무인자율화 수준이 고도화되는 등 차세대 제조기술이 발전할수록 가치사슬 체계가 분화 또는 통합하는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디지털화· 그린화 추세는 비즈니스 리셋 재촉

요즈음 변혁 화두인 디지털화, 그린화 추세에 따른 최종 제품 변혁 또한 가치사슬 체계의 재편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최종 제품은 최종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제품, 서비스와 같은 단품뿐만 아니라 이 둘을 결합해 고객의 구매와 이용 니즈를 해결해주는 솔루션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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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주력 제품이 일상용품화하거나, 디지털화·그린화한 제품으로 바뀌고 있으며, 한편으로 서비스 부문으로의 수익 이동이 거세지는 등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화·그린화로 인한 최종 제품 변혁은 이 수준을 뛰어넘어 앞으로 생존과 성장에 핵심 역할을 할 제품으로 변혁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운영체제를 넘어 사업 방향을 재설정하는 ‘사업 리셋’ 수준까지 CEO를 압박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으로 비대면 경제사회 활동이 일상화되는 환경으로 급변하자 그동안 ‘고객이 다가와야 구입할 수 있는’ 콧대 높은 오프라인 업체까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에게 다가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서둘러 도입하게 했다. 그런데 고객 스스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솔루션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유형제품 위주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복수 개의 단품을 결합하고 여기에 더해 서비스를 결합한 최종 솔루션 개발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존의 제조 중심 모델에서 빨리 벗어나 수익성 높고, 고객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솔루션을 제안해 지속적인 수익창출을 기대하는 서비스 중심의 제조 모델로 변혁해야 한다.

일찍이 이런 추세에 대응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품-서비스 비즈니스(product-service model)’, 소니의 ‘리커링 비즈니스(recurring business)’ 등이 최종 제품의 변혁에 대응한 모델이다. 민간 항공엔진 제조사인 롤스로이스 등 일부 대형 업체는 이미 서비스 매출이 제조 부문을 능가하고 있다. 제조업체냐 서비스업체냐의 구분이 무의미한 비즈니스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화에 이어 미래 비즈니스를 규정 짓는 또 다른 키워드가 그린화다. 현재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세계 주요국의 재정 투자 집행은 ‘디지털화, 그린화’ 두 곳에 맞춰져 있다. 작년의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를 계기로 탄소중립화 관련 변혁 로드맵이 발표되고, 그린 사업임을 판별해주는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까지 마련되면서 ‘그린 제품 개발’과 ‘운영체제의 그린화’ 두 방향으로 더욱 자금과 제품 수요가 몰려들 것이다.

이런 제품 변혁 추세가 가장 거세게 불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완성차업계다. 판매 실적과 제품력이 일천한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여러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디지털, 친환경’을 무기로 엄청난 시장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애플, 소니, 바이두 등 ICT 업체가 모빌리티 서비스 진출을 동기로 전기차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이에 대응해 내연기관차 중심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중심으로 제품 전환 로드맵을 속속 발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기능을 갖춰 서비스를 확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CES에서 현대자동차는 차량을 뛰어넘는 ‘메타모빌리티’라는 차세대 이동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했고, 도요타는 소프트웨어인 차량 OS 개발을 들고나왔다. 포드는 미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서비스 확충을 통해 온라인 간편결제 시장 진출을 발표했다. 완성차업체뿐만 아니라 ICT업체를 비롯한 서비스업체까지 가세하면서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본격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팬데믹이 바꾼 비즈니스 판…CEO의 달라진 선택지 [이장균이 본 비즈니스 변혁 세상]
그런데 지금은 최종 제품보다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경쟁하는 시대다. 최종 제품 변혁을 통한 시장 주도권 확보 즉, 가치사슬체계를 장악하는 업체가 되려면 핵심 경쟁 기반(base of competition)이 되는 디지털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담은 최종 솔루션을 만들어 제안할 수 있는 업체를 ‘가치통합업체(value integrator)’라 하는데, 이들은 시장과 고객을 직접 상대해 얻은 정보로 가치사슬 내 제품 개발 방향을 결정하면서 가장 많은 수익을 차지한다. 과거에는 대체적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최종 조립업체이거나 대형 유통점이 가치통합업체의 위치에 올라섰으나, 최근에는 시장 주도권이 대형 디지털 기술업체인 ‘빅 MAMAA’로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메타(페이스북), 알파벳(구글), 아마존을 비롯해 서비스 플랫폼을 독자 확보한 업체로 옮겨가는 추세다.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자체 플랫폼을 갖춰야만 협력업체, 고객의 이탈을 방지하는 록인효과(lock-in effect)를 발판 삼아 더욱 강력한 시장 장악력으로 인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차량OS, 빌딩OS처럼 전통적인 업종 주도 업체들은 시장 장악력이 높은 디지털 플랫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말 자동차 메이커인 스텔란티스는 제조 플랫폼과 ICT 플랫폼 두 가지 유형의 플랫폼으로 수익성 높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회사로 변신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또한 미국 존디어의 마이존디어(MyJohnDeere), 일본 고마쓰의 랜드로그(LANDLOG), 히타치의 루마다(Lumada)처럼 플랫폼은 주력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나아가 데이터 비즈니스 사업으로 진출하는 데 기틀이 되고 있다. 계속해서 더욱 확장된 고객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플랫폼이 제휴한 연합 플랫폼(platform of platform)으로 경쟁하는 양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확장 변혁(XX)’ 시대, CEO의 신속한 선택·대응 필요

그럼 전통 제조업 CEO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편되는 가치사슬에서 어떤 역할에 집중할 것인지 선택 가능한 전략을 정리해 보자. 먼저 최종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가치통합업체 역할로서 지금까지의 단품에서 더 나아가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한 솔루션을 창출하고 제안하는 서비스 중심 제조업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단품을 만들어 가치통합업체에 공급하는 최종 완성품 공급업체 또는 최종 제품에 들어갈 핵심 부품 제조업체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지가 있다. 또 하나의 선택지도 있는데 바로 제조 위탁업체다. 지금은 반도체, 의약품 업종에서 활발한 위탁업체 유형이 제조 디지털화가 가속하면서 다양한 업종에서 제조 아웃소싱하는 MaaS(Manufacturing as a Service) 유형이 발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이 제조 기반의 선택지였다면, 이를 벗어나 디지털 기반의 서비스 업체로 업종을 전환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가치사슬의 각 활동에 디지털화가 접목되는 디지털 변혁 추세로 지금까지의 주력 제품에 기반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볼 수 있다. 공유경제, 구독경제 등 디지털 기반의 서비스 업체로 나아가는 방안 또는 가치통합업체가 구축한 빅데이터 플랫폼 생태계에 디지털 응용 앱을 제공하거나 이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등이다. 끝으로 지금까지의 주력 사업을 버리고 그린 기술이나 디지털 기술과 관련된 전혀 새로운 제조업이나 디지털 서비스업으로 주력 전환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가치사슬 재편에의 대응 속도와 크기는 업체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업력이 일천한 벤처 스타트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으로 전통업체와 시장을 뒤흔들고 있음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디지털 변혁(DX·digital transformation)과 그린 변혁(GX·green transformation)이 융합된 ‘확장 변혁(XX·extended transformation)’의 시대다. 더 이상 대응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최근 들어 사명을 변경하거나 미래 비전을 발표하고 그리고 동종업체 간, 전통업체-ICT 업체 간 전략적 제휴 또는 M&A 소식이 빈번히 들려오고 있다. 기존의 성공을 가져온 사업 방식을 버리는 ‘사즉필생’의 자세로 빨리 선택 결정하고, 실행할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 이장균 수석연구위원은

팬데믹이 바꾼 비즈니스 판…CEO의 달라진 선택지 [이장균이 본 비즈니스 변혁 세상]
30여 년간 정부 산업정책과 기업 경영전략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온 전문가다. 중앙대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수학한 뒤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으로서 중화학 산업부터 서비스산업에 이르는 다양한 업종을 다뤘다. 최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 정책을 비롯해 화두인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차세대 산업 및 기업 변혁을 중심으로 연구와 강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서로는 《비대면 사회: 변화와 혁신》(공저), 《그들은 왜 성공한 퍼스트 무버가 되었나》(공저)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