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에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2차전지와 반도체 등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에만 투자금이 몰리고 제약·바이오 업종은 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상장을 철회하는 바이오 기업도 속출하고 있어 신규 상장 업종의 불균형 문제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양극화 심화되는 IPO 시장…배터리 '웃고' 바이오 '울고'

○줄줄이 상장 포기하는 바이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22일 일반청약을 진행한 반도체 장비 부품 전문기업 비씨엔씨에 13조953억원의 증거금이 몰렸다. 반면 같은 기간 청약을 받은 진단검사 플랫폼 노을은 275억원의 증거금을 모으는 데 그쳤다. NH투자증권에서만 청약을 시행한 비씨엔씨와 달리 노을은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두 곳에서 동시에 청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올해 상장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한 탓이다. 앞서 공모를 진행한 식물세포 개발기업 바이오에프디엔씨와 동물의약품 개발사 애드바이오텍은 청약 경쟁률이 각각 5 대 1, 27 대 1로 저조했고 상장 후 주가는 공모가를 밑돌았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상장 포기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올초 파인메딕스, 한국의약연구소가 상장 심사를 철회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합성신약 개발사 퓨쳐메디신이 상장을 미루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예비심사를 청구한 지 4개월여 만이다. 통상적으로 예비심사에는 영업일 기준 45일이 걸린다. 예정대로라면 올초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심사가 지연되자 연기를 택한 것이다.

바이오업계는 퓨쳐메디신의 상장 철회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코스닥 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서 두 기관으로부터 각각 A등급을 받은 데다 HK이노엔에 기술 수출한 경험도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해에는 노보믹스, 레몬헬스케어 등 12곳의 제약·바이오 회사가 심사에서 무더기로 고배를 마셨다. IB업계 관계자는 “신라젠 사태 이후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 기업의 사업성과 기술 진행 정도, 기술이전 이력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며 “올해부터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상장 건수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체는 상장 봇물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배터리 회사들이다.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을 시작으로 2차전지 관련 소재와 장비 제조사들이 줄줄이 증시 입성을 준비 중이다.

대표적인 기업은 최근 코스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한 2차전지 분리막 제조사 WCP다. 독자적인 고분자 필름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SDI 등에 분리막을 납품하고 있다. 국내 분리막 시장 점유율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에 이어 2위다. 지난해 매출은 약 2000억원으로 2020년(1119억원)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상각전영업이익은 8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시 기업가치는 4조~5조원대로 예상된다. 주관사는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로, 이르면 4월 중순 심사를 승인받고 5~6월 공모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폐배터리 재활용업체 성일하이텍도 증시 입성을 추진한다. 전기차 배터리와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제품 폐기물을 해체한 뒤 열처리, 분쇄, 침출 등의 과정을 거쳐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구리 등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를 추출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1500억원, 영업이익은 170억원대로 추정된다. 증권가는 성일하이텍의 기업가치를 8000억원대로 보고 있다. 2차전지 원자재가 부족해지고 소재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몸값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