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대신 털실 장전…탕탕탕…그림이 수놓아졌다
‘타타타타타타탕….’

지난 23일 서울 해방촌의 한 공방(투데이이즈터프팅데이). 따발총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눈을 감으니 사격 연습장에 와 있는 듯했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총알 대신 컬러풀한 실이 발사됐다. 천으로 된 캔버스 위엔 포근한 느낌의 그림이 수 놓이기 시작했다.

터프팅이란 터프팅 건을 이용해 천 위에 털실을 쏘아 심는 섬유 공예다. 잔디 등이 촘촘하게 모인 다발을 의미하는 ‘터프트(tuft)’에서 유래한 이 활동은 코로나19 이후 국내에 소개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느린 템포에서 정적으로 이뤄지는 다른 공예와 달리 역동적으로 총을 쏘아가며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게 매력이다. 러그·거울·방석·코스터 등 만들 수 있는 제품도 무궁무진하다. 스포츠와 예술이 결합된 듯한 색다른 취미, 터프팅에 도전해 봤다.

총만 있으면 나도 작가

이날은 30×30㎝ 정도 사이즈의 미니 러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기본 준비물은 실과 실을 쏠 천(몽스 원단 등), 프레임, 터프팅 건, 가위 등이다. 원하는 도안을 찾아 밑그림을 만드는 게 시작이다.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미리 찾아둔 그림(테디베어, 튤립)을 천에 쏜 뒤 네임팬으로 테두리를 따라 그렸다. 직접 만든 티를 내고 싶어 이니셜도 추가했다. 원하는 실을 고르고, 터프팅 건에 끼우고 나면 준비가 완료된다.

바늘처럼 뾰족한 총 끝을 실과 함께 천에 끼운 채 방아쇠를 당기듯 스위치를 누르고 빠르게 아래에서 위로 이동시켰다. 캔버스에 순식간에 직선의 실이 박혔다. 이 작업을 옆으로 옮겨가며 연이어 하면 일자의 선들이 모여 면이 만들어진다. 곡선은 총을 조금씩 천천히 쏘며 방향을 틀어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전아미 작가는 “중요한 것은 총을 쏘는 속도를 비슷하게 유지해 실이 일정한 밀도로 박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천을 강하게 누르면서도 적당한 속도를 내야 너무 성기거나 빽빽하지 않게 심어진다”고 설명했다.
총알 대신 털실 장전…탕탕탕…그림이 수놓아졌다
총을 쏘는 반대 면에 그림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시로 뒤쪽을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실이 헐겁게 박혀 빈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에는 터프팅 건을 몇 차례 더 쏴줬다. 심어진 털이 너무 길거나 지저분할 땐 가위로 끝을 잘라 정리했다. 색색의 실을 갈아끼우며 몇 시간을 총을 쏘다 보니 어느새 작품은 캔버스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져 보니 보드라우면서도 톡톡한 고급 카펫 같은 촉감이었다. 완성된 모양을 잘라낸 뒤, 뒷면에 라텍스 본드를 발라 하루 정도 자연 건조하면 작품이 마무리된다. 오랜 시간 총을 쏘느라 팔이 욱신거렸지만, 내 이름 이니셜이 박힌 귀여운 모양의 러그를 받아들자 고통은 잊힌 지 오래였다.

근력·지구력도 필요해

초보부터 전문가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터프팅의 큰 매력이다. 김 작가는 “특별한 손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간단한 도안으로 손쉽게 도전할 수 있고, 터프팅 건과 실의 종류를 다양하게 활용하면 복잡한 모양의 고급 작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며 “시원하게 총을 쏘는 동적인 예술 활동이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총알 대신 털실 장전…탕탕탕…그림이 수놓아졌다
단 적지 않은 시간과 체력이 소요된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이날 작은 크기의 러그를 만드는 데도 총 세 시간 반이 걸렸다. 일반 발매트 정도 크기의 작품을 만들려면 터프팅에만 약 7시간이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터프팅 건의 무게도 1.3㎏에서 최고 3㎏에 달한다. 이를 장시간 들고 버텨야 하기 때문에 근력이 없으면 힘들 수 있다.

‘후작업’에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트리밍 기계나 가위로 표면을 잘라 정리해주는 ‘카빙’ 작업에는 최소 2~3시간이 소요된다. 카빙을 오래 해줄수록 더 깔끔하고 선명한 표면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정소람/김채연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