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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진단했다. 계기는 코로나19 사태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정부 지출은 줄지 않을 전망이다. 고령화와 탈탄소,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신기술 투자 등에서 정부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재정전쟁》은 이런 전망에 동의한다. 책은 “지난 40여 년과 달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며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재정의 힘이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어떻게’다. 무작정 지출을 늘린다고 나라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게 아니다. 전 교수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복지 포퓰리즘에 의존하다 보면 더 큰 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납세자들이 증세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정부의 비효율과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마을] 큰 정부든 작은 정부든…경제성장이 '최고의 복지'
정부가 지출을 늘리려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빚을 내는 것(적자 재정)과 국민에게 돈을 걷는 것(증세)이다. 전 교수는 적자 재정보다 증세가 낫다고 말한다. 일시적인 경기변동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적자 재정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구조적 지출 증가를 적자 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나랏빚은 경제 안정성을 헤친다. 미래 세대의 부담도 커지기 마련이다.

증세도 가시밭길이다. 복지 지출만 놓고 봤을 때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20.0%였다. 한국은 12.2%에 그쳤다. 이 격차를 절반 정도로 좁히려면 GDP의 4%만큼 증세해야 한다. 사회보장세를 포함하는 광의의 조세부담률(국민부담률)을 15%가량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렇게 늘어난 조세부담률 31%도 OECD 평균(33.4%)엔 못 미친다. 최고 수준인 스웨덴은 42.8%에 이른다. 그런데 왜 한국 납세자들은 증세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까. 저자는 ‘정부 신뢰도’에서 원인을 찾는다. 스웨덴 정부는 투명하고 생산성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월드 캡 폴 조사에서 ‘정부를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신뢰한다는 응답이 한국은 45%에 머물러 OECD 평균(50.7%)보다 낮았다. 스웨덴은 67%에 이른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도 한국(61)은 스웨덴(85), 일본(74)은 물론 OECD 평균(66.9)보다 낮았다. 증세를 위해선 정부 신뢰도와 효율 제고가 선행돼야 한다.

증세를 위해선 조세 전가와 회피, 저항을 잘 고려해야 한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인상한 뒤 벌어진 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정부는 기대 이상의 세수를 얻었지만 집값 안정이란 목표에 실패했고, 조세 전가로 서민 세입자들이 피해를 봤다. 전 교수는 나라마다 발전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보유세와 거래세 중 무엇이 낫다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처럼 전세 시장이 발달해 조세 전가가 쉽고, 자가 주택에 대한 조세 저항이 큰 환경에선 보유세 인상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부자 과세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부자니까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식으론 사회적 합의에 이르거나 조세 저항을 피하기 어렵다. 유럽의 부유세 실험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이유다. 저자는 고율의 누진 소득세와 자본소득을 겨냥한 부유세 모두 왜곡이 크기 때문에 차라리 특정 사치품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사치세 도입을 제안한다.

책은 증세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증세 방안을 논의하지만 ‘최선의 복지정책은 경제성장’임을 빼놓지 않는다. 안정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나라는 공공복지 수준과 관계없이 소득 분배가 악화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2010년 기준 21.1%로 한국(7.9%)보다 높지만 소득분배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한국보다 현저히 나빴다.

서구의 경제학자들에 비해 한국 경제학자들은 현실 문제에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는 지적을 듣는다. 그런 점에서 증세와 재정에 대해 자신의 시각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는 이 책은 주목할 만하다. 세밀한 뒷받침 자료와 더 깊게 파고드는 분석이 부족한 점은 조금 아쉽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