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면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도 초비상이다. 당장 천연가스,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 부담이 늘어나는 한편 자동차 등 대(對)러시아 수출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네온, 크립톤 등 희귀가스는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당장 공급망 재정비에 나섰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러시아에 공장을 운영 중인 국내 기업들은 일제히 긴급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는 작년 기준 한국 수출의 1.6%, 수입의 2.8%를 차지하는 10위 교역 대상국으로, 한국 기업 40여 곳이 진출해 있다.

제조기업들은 당장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천연가스, 원유 등 상승세가 매우 큰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협력사들과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품 가격 상승폭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공급망 체계를 다시 짜고 있다는 설명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석유화학 원자재 수입 가격이 10% 오르면 국산품 가격은 0.25% 상승한다.

우크라이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부 희귀품목은 수급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네온, 크립톤, 크세논 등이 대표적이다. 작년 기준 네온의 우크라이나 수입 의존도는 23.0%, 크립톤은 30.7%에 달했다. 크세논은 러시아 수입 의존도가 31.3%, 우크라이나가 17.8%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 땐 자동차 수출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재는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금융제재로 수출 대금을 받는 데 어려움이 예상돼 사실상 자동차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다. 작년 러시아 수출품 1위는 승용차로, 수출액은 25억4900만달러(약 3조원), 러시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5%에 달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러시아에 3만8161대, 기아는 5만1869대를 수출했다. 자동차 업계 고위관계자는 “2014년 서방의 러시아 제재 당시 승용차 수출이 1년 만에 60% 넘게 급감했다”며 “수출 감소는 물론 대금 회수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 공장 운영도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반도체 등 첨단제품의 러시아 수출이 차단되면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 23만 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칼로가 생산법인에서 TV와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쟁이 발발하면 물류난이 벌어지는 데다 수출 통제가 이뤄지면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의 수급 차질로 공장 운영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기업들은 현지 주재원을 한국으로 철수시키거나 인근 국가로 이동 조치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은 수출 통제에 대비해 주요 부품의 재고를 확충하고, 부품 공급처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규/이수빈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