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포항 오천읍개발자문위원회를 비롯한 오천읍 주민 150여명이 포스코지주사 포항 유치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앞에서 포항 오천읍개발자문위원회를 비롯한 오천읍 주민 150여명이 포스코지주사 포항 유치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코그룹이 새롭게 설립하는 지주사와 미래기술 연구개발(R&D) 조직을 포항에 설립하기로 했다. 주요 대선 주자를 비롯해 지역 정치권 등의 압박에 포스코가 결국 '백기'를 든 모양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민간 기업의 소재지 결정 등 경영상 판단에까지 개입, 훼방을 놓은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포스코홀딩스·미래연구원 포항에 본점 둬

국민의힘 김정재 국회의원(포항 북구)에 따르면 25일 전중선 포스코 사장은 신설 지주사 포스코홀딩스 및 산하 미래기술연구원 소재지를 포항에 둔다는 회사 측 방침을 김 의원 측에 전달했다. 당초 서울에 설치하고자 했던 두 조직의 본점 소재지를 포항에 두고, 연구조직인 미래기술연구원은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서울과 포항에 이원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 골자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어 지주사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한 이후 포항시 및 정치권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포항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포스코가 그룹 지주사도 포항에 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지주사 본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이 서울에 설립되면 인력 유출과 세수 감소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주요 이유다.

그간 포스코는 이에 대해 지주사 이전으로 인한 포항에서의 인력 유출이 거의 없음을 강조해왔다. 신설 포스코홀딩스 총 인력은 200여 명이다. 이들은 현재 포스코 소속 시절에도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에 근무하는 그룹 전략본부 및 계열사 인력 소속만 지주사로 바뀐다.

기존 철강사업 회사인 포스코 본사는 여전히 포항에 남는다. 지주사 전환으로 인한 인력 유출은 없는 셈이다. 사업장 소재지와 면적에 비례해 부과되는 법인지방소득세 세수에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법인세는 중앙정부에 납부하는 세금이어서 지주사 전환과는 무관하다.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에 있는 포스코 기술연구원과 별개로 포스코그룹이 새로 만든 조직이다. 철강 관련 연구에 초점이 맞춰진 기술연구원과 달리 AI(인공지능), 이차전지소재, 수소 및 저탄소에너지 분야 등 미래기술 연구를 진행한다.

포스코그룹은 미래기술연구원은 국내외 우수한 과학자 영입을 위해 서울에 둘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삼성, LG등 전자기업을 비롯해 최근엔 현대중공업, 두산 등 중공업 그룹들까지 첨단 연구 인력 유치에 나서 인력 쟁탈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새 연구소만큼은 수도권에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재명·윤석열·안철수 모두 포항 유지 '압박'

공전을 거듭하던 포스코와 포항시 측의 논의는 최근 모든 대선 유력주자들이 포스코 지주사의 서울 설립을 반대하는 견해를 내놓으면서 급격히 포항시 측으로 넘어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스코 지주회사는 포항에'라는 단문 메시지를 올렸다. 그는 지난 11일에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포스코 본사 서울 설립 결정은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도전정신, 민족 기업으로서의 역사적 사명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지난달 27일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을 만나 '국가기관도 지방으로 가는 마당에 국민기업 포스코가 지주회사를 서울에 설치하는 것은 지방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23일 포항 유세에서 "포항제철은 포항이 만든 것이고 포스코의 고향이 바로 포항"이라며 "자기 자신을 키워준 포항을 떠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도 대선주자들까지 공개적으로 압박에 나서면서 포스코 측이 결국 굴복한 모양새"라며 "정부 지분 하나 없는 민간 기업 결정이 표심 잡이용 포퓰리즘에 뒤집혔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이번 대선 이후 포스코에 드리워질 관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리더쉽도 이번 사건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포스코의 지주사 전환 안건은 지난 달 28일 참석 주주 8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해당 안건에는 신설 지주사의 소재지를 서울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주사 소재지를 서울로 한다는 내용이 정관에 담기면서 포스코그룹은 지주사의 포항으로의 재이전을 위해선 이사회 및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포스코 측은 "이사회 및 주주설득과 의견수렴을 통해 2023년 3월까지 포항으로 이전할 것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임원은 "국내외 유수 기업들은 우수 인재를 확보하겠다고 도심 정중앙에 있는 최신 빌딩을 임차하고 사옥도 리모델링하는 상황"이라며 "포스코가 수도권에도 연구소를 이원 운영하겠다고 하지만 남들도 탐내는 인재를 구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