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2일에 이어 꺼내든 2차 대(對) 러시아 제재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당시에 비해 제재 강도가 세졌다고 하지만 러시아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제재는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에너지 제재를 넣은 유럽연합(EU)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러시아의 에너지 관련 제재도 뺐다.

크림반도 사태 때와 달리 '화웨이식' 수출 통제 포함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의 침공은 묵인될 수 없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이 당면할 결과가 한층 가혹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가혹한 제재에 나설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향해 누차 경고를 보내 왔다.

한층 범위가 넓어진 이번 제재는 러시아의 주요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와 함께 항공우주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직접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출 통제가 골자다. 중국 기업 화웨이에 적용한 것과 유사한 제재다. 미국 기술을 활용한 모든 제품이 러시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할 당시엔 꺼내지 않은 카드다.

미 상무부는 러시아가 공격적인 군사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다른 품목에 대한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면서 국방, 항공우주, 해양 분야를 주로 겨냥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보안 장비, 레이저, 센서 등이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수출통제 대상에는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품목도 들어가 있다. 러시아로 수출하는 한국산 반도체와 자동차, 가전, 휴대폰 등이 모두 포함된다.

다만 미국은 화웨이 제재 때와 마찬가지로 소비재로 활용하는 제품에 한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준다. 군용을 제외한 자동차와 가전은 대부분 예외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며 휴대폰은 개인용이나 사업용이냐에 따라 나뉠 전망이다.

이번엔 은행 규제가 추가됐다. 푸틴 대통령 측근을 비롯해 러시아 지도층 인사를 겨냥한 것이다. 미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제재로 러시아에서 가장 큰 스베르방크와 VTB 등 두 은행을 포함한 90여개 금융기관이 미국 금융 시스템을 통해 거래할 수 없게 된다.

EU는 에너지 규제 넣었지만 미국은 제외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에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제재도 뺐다. 격화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유가나 천연가스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원유 생산국이자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이에 비해 EU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를 포함시켰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금융, 에너지, 교통 부문을 겨냥하고 수출 통제 등을 포함한 추가 제재에 합의했다.

EU 정상들은 이번 제재는 금융, 에너지, 교통 부문과 군민 양용 제품, 수출 통제, 수출 금융, 비자 정책을 포함하며 러시아 개인들도 추가로 제재 명단에 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구체적인 제재 내용은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에너지 제재와 관련해선 러시아의 원유나 천연가스 생산시설에 대한 규제를 담을 전망이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