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실험 정신은 이번 시집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부조화 연인-신인(神人)의 생사, 캉캉을 추는 말 푸코와 빙글빙글 감시탑’은 수학 공식과 그래프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시다. ‘기호부대 병사들 야간작전 일지’는 수학 기호를 적극 차용하고, ‘오공초등학교 조회시간’은 운동장에 줄을 맞춰선 학생들처럼 글자를 배치했다.
함 시인은 문자와 의미, 존재와 무한, 말의 한계와 가능성, 그 소멸 과정을 탐구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우릴 납치해 이 시의 구와 절, 반복되는 숨/운율과 여백에 가두어놓았을까/세계는 심장 없는 시, 허나 쿵쿵 심장소리 천지 사방 울리니/어떻게 이 시 속에서 탈옥할 것인가’(‘전투적 기계식물 무궁화’ 중). ‘흑백 벽돌 수용소-어둠 속 225人의 유대인 포로와 가시철조망’에선 아예 혀의 수많은 수식어를 시각적으로 배치해 ‘말’이란 글자를 만들었다. 말 속에 갇힌 포로들이다.
난해한 시만 있는 건 아니다. ‘수학자 누(Nu) 18’에서는 ‘하늘에서 어린 돌고래들이 천천히 지붕으로 내려왔다 폭설이 폭설을 폭설로 지워나가는 이생의 기이한 겨울밤, 수억 년 전에 사라진 별빛들이 죽지 않은 당신의 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고 했다.
함 시인은 한양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등단했다. 이상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을 받았다. 여러 권의 동화책을 쓴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