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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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1910~1937)을 떠올리게 하는 실험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함기석 시인(사진)이 일곱 번째 시집 《음시》(문학동네)를 발표했다.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이후 2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그의 실험 정신은 이번 시집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부조화 연인-신인(神人)의 생사, 캉캉을 추는 말 푸코와 빙글빙글 감시탑’은 수학 공식과 그래프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시다. ‘기호부대 병사들 야간작전 일지’는 수학 기호를 적극 차용하고, ‘오공초등학교 조회시간’은 운동장에 줄을 맞춰선 학생들처럼 글자를 배치했다.

함 시인은 문자와 의미, 존재와 무한, 말의 한계와 가능성, 그 소멸 과정을 탐구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우릴 납치해 이 시의 구와 절, 반복되는 숨/운율과 여백에 가두어놓았을까/세계는 심장 없는 시, 허나 쿵쿵 심장소리 천지 사방 울리니/어떻게 이 시 속에서 탈옥할 것인가’(‘전투적 기계식물 무궁화’ 중). ‘흑백 벽돌 수용소-어둠 속 225人의 유대인 포로와 가시철조망’에선 아예 혀의 수많은 수식어를 시각적으로 배치해 ‘말’이란 글자를 만들었다. 말 속에 갇힌 포로들이다.

난해한 시만 있는 건 아니다. ‘수학자 누(Nu) 18’에서는 ‘하늘에서 어린 돌고래들이 천천히 지붕으로 내려왔다 폭설이 폭설을 폭설로 지워나가는 이생의 기이한 겨울밤, 수억 년 전에 사라진 별빛들이 죽지 않은 당신의 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고 했다.

함 시인은 한양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등단했다. 이상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을 받았다. 여러 권의 동화책을 쓴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