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도입…줄소송으로 지역·장소·연령별로 달라
"보건소 행정 소모 크고 논란으로 사회적 연대 약화"
'정점 지난 뒤 조정' 방침 밝혔지만 조기 중단…유행확산 영향 줄 듯
논란속 누더기된 방역패스 결국 중단…거리두기 완화요구 커질듯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도입 4개월 만에 사실상 전면 중단된다.

정부는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다음 달 1일 0시부터 식당·카페 등 11종 다중이용시설 전체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일시 중단'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는 등 상황 변동이 없는 한 계속 중단한다는 것을 말한다.

4월 1일 시행될 예정이던 청소년 방역패스도 중단한다.

50인 이상 대규모 행사·집회에 적용되던 방역패스도 해제된다.

보건소나 선별진료소,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행하던 음성확인서 발급 업무도 멈춘다.

QR코드 확인 등 절차도 사라진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보건소가 방역패스 발급 업무 대신 고위험군 확진자 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보건소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확진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논란속 누더기된 방역패스 결국 중단…거리두기 완화요구 커질듯
◇ 줄소송에 혼란만 가중…방역행정력 확진자·고위험군 관리에 집중

전해철 중대본 2차장(행정안전부 장관)은 "오미크론의 특성을 고려한 방역체계 개편과 연령별·지역별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현 방역패스는 델타 변이 유행 상황을 토대로 마련된 것인데, 전파력은 강하고 중증화율·치명률은 낮은 새 변이인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면서 유행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부는 연령별·지역별 형평성 문제도 거론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방역패스를 둘러싼 소송이 제기되고 일부 방역패스의 효력을 중단하라는 판결도 속속 나오면서 정책이 지역·연령에 따라 들쭉날쭉 엉키게 됐다.

서울, 경기, 대전, 인천, 충북 등 지역에서는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 효력정지 결정이 나왔다.

대구에서는 청소년뿐 아니라 60세 미만의 식당·카페 방역패스를 중단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정부는 지난 23일 기준으로 총 18건의 방역패스 관련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국가 소송이 8건, 지자체 소송이 10건 걸려 있다.

방역패스는 10월 19일 수도권에서 접종완료자만 스포츠 경기장 입장을 허용하는 등 제한적으로 도입됐다가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방역체계를 처음 개편한 지난해 11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모든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을 없애면서 유흥시설이나 노래연습장, 실내체육시설, 목욕장업 등 위험도가 높은 시설에 방역패스를 적용하기로 했다.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 운영자들은 다른 업종과 차별이라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확진자가 급증하자 지난해 12월 6일부터 방역패스를 식당·카페를 비롯한 실내 다중이용시설 전반으로 확대해 정책을 더 강화했다.

이때는 학원, 독서실·스터디카페도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 포함돼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학교·학원을 통한 학령기 감염자들이 증가하자 정부는 12∼18세도 방역패스 적용받도록 하는 '청소년 방역패스' 도입을 추진했다.

정부는 당초 올해 2월 1일부터 청소년 방역패스를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거센 반발에 3월 1일로 미뤘고 4월 1일로 한 차례 더 연기했다가 결국 시행하지도 못한 채 중단했다.
논란속 누더기된 방역패스 결국 중단…거리두기 완화요구 커질듯
백신 부작용을 여전히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돌파감염 사례가 증가하고 오미크론 확산으로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도 감소하자 방역패스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졌다.

영업 제한으로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한숨도 커졌다.

정부는 형평성 논란을 의식해 1월 10일부터 백화점·대형마트에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기로 했는데, 감염 위험이 적은 필수 시설 이용까지 제한한다는 또 다른 논란이 제기됐다.

전국에서 방역패스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는 법원 결정도 연달아 나오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18일부터 ▲독서실·스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미술관·과학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 ▲학원 ▲영화관·공연장 등 위험도가 낮은 6종 시설의 방역패스를 해제하기로 하면서 한발 뒤로 물러났다.

지난 25일에는 보건소 인력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 달 1일부터 확진자의 동거인 관리를 전부 수동감시 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밀접접촉자의 격리 의무를 없앤 것으로, 이에 따라 방역패스 유지 필요성이 더욱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유흥시설, 실내체육시설, 노래연습장, 목욕장, PC방, 식당·카페 등 11종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를 전부 풀기로 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한정된 보건소 자원을 고위험군과 확진자 관리에 집중할 필요성, 접종률 향상으로 방역패스 논란과 갈등이 커지고 사회적 연대가 약화되는 문제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논란속 누더기된 방역패스 결국 중단…거리두기 완화요구 커질듯
◇ 이미 엔데믹 방역? 유행 확산 우려도…정부 "거리두기 완화도 논의"
전문가들은 방역패스의 효용성이 이미 떨어진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무용론은 한참 전부터 나왔다.

오미크론으로 감염 특성과 역학적 특성이 달라진 것을 고려했을 때 빨리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패스는 어느 정도 조절이 되는 유행일 때 의미가 있다.

현재 유행은 특정한 장소나 시간, 상황과 무관하게 확산하는 양상이어서 방역패스의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오미크론 특성과 사회 여론, 보건소 업무 과부하 등 문제를 두루 고려한 조치라고 강조했지만, 정부 메시지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또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다른 방역조치들은 완화하면서도 방역패스에 대해서만큼은 미접종자 보호 등을 이유로 계속 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왔다.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중대본은 거리두기와 방역패스의 경우 다음 달 중순으로 예상되는 오미크론 유행 정점이 지난 뒤에 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행의 정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방역패스를 중단해 섣부르게 신호를 보내면 유행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해제 시점이 조금은 빠르다"며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유행 정점에 도달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다음 주 정도부터 전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방역패스 중단이 "최소한 전파 예방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 반장은 "오미크론의 특성에 맞춰 방역체계 전체를 재편하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해 달라"며 "확진자 억제 정책에서 중증환자와 사망자 최소화에 자원을 집중하는 체계로 전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의 방역 완화 움직임이 코로나19 출구 전략의 과정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유행이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전환하면 '엔데믹'(풍토병)에 맞춰 일상회복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지속해서 밝혀왔다.

정 교수는 "그런 쪽으로의 변화는 몇 주 전부터 있었다"며 "피해 최소화 전략은 피해를 정말 줄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환자 병상 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역패스 중단으로 사적모임·영업시간 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손 반장은 "거리두기에 대해서도 추가로 완화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지는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고, 그런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접종자 보호 대책에 대해서는 "요양병원 등 취약시설에 대한 감염 보호 조치는 유지한다"며 "미접종자는 스스로 감염을 최소화하거나 접종에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