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들이 한국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와 세계평화, 인권 등 인류 보편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진영의 일원이 맞는지 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동맹국들과 달리 그동안 대(對)북한·러시아 제재에 수동적·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자초한 딜레마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이 질문에 행동으로 답해야 할 때다.

부끄럽지만, 최근 정부와 여권이 보여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태도는 그런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노인, 신혼부부 등 남녀노소 시민들이 앞다퉈 총을 들고 결사항전 중이다. 미국 등 주요국도 대러시아 금융제재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등 참전을 뺀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어제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전쟁광(狂)에게 그것이 헛된 꿈이라는 걸 단합으로 보여주자”며 대러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에 러시아가 핵 카드까지 언급하자 전 세계는 급속히 ‘러시아 고립’ 쪽으로 결집하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한국만 유독 미적거리고 있다. 사태 초 미국의 동맹국 중 유일하게 대러 제재 참여를 유보했다가, 러시아의 전면 침공 직전에야 동참 의사를 밝혔다. 여당 대선 후보와 여권 인사들, 그리고 일부 방송은 더 한심했다. 야당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정치 초보 대통령이) 전쟁을 자초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국제사회의 맹비난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교훈은 약한 사람은 절대로 강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는 쉬에지안 주(駐)오사카 중국 총영사의 발언 수준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정부는 대중·대북 굴종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전선언을 의식해 유엔이 북한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 때도,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 때도 번번이 빠졌다. 이러니 미국에선 ‘한국 패싱’이 일상이 되고, 대러 수출 규제 파트너 32개국에서 한국만 제외된 게 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이 일본, 유럽연합(EU) 등에는 철강관세를 면제해 주면서 한국과는 협상 날짜도 안 잡고 있다. 미국 조야에선 “선과 악이 극명하게 나뉠 때 기회주의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부는 틈만 나면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이고, ‘BTS’ ‘기생충’ 등을 배출한 문화강국이라고 제 자랑하듯 해왔다. 하지만 말로만 선진국이라고 떠들 뿐, 세계평화 인권 자유 민주주의 반폭력 등 보편적 이슈에선 침묵 또는 외면으로 일관해왔다. 홍콩 민주화운동, 미얀마 사태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누가 선진국으로, 진정한 동맹국으로 한국을 대접해 주겠는가.

정부는 어제서야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대러 제재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모든 정책 결정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그 전보다 10배, 20배 비용과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