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위스키 성지’로 떠오른 서울 남대문 주류도매상가에서 지난 주말 소비자들이 다양한 위스키를 살펴보고 있다. 박종관 기자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위스키 성지’로 떠오른 서울 남대문 주류도매상가에서 지난 주말 소비자들이 다양한 위스키를 살펴보고 있다. 박종관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1시 서울 남대문시장 주류상가. 상가 안 좁은 통로는 위스키를 사러 온 이들로 가득 차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상인에게 가격을 묻고, 흥정하는 2030 젊은 소비자가 대다수였다. 주말 데이트를 겸해 여자친구와 온 박모씨(30)는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퇴근 후 혼자 가볍게 위스키를 마시는 취미가 생겼다”며 “요즘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소주보다 위스키를 마시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

젊은 층 위스키 수요에 수입액 32.4% ‘껑충’

28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위스키 수입액은 1억7534만달러(약 2115억원)로 집계됐다. 전년(1억3246만달러·약 1598억원) 대비 32.4% 증가했다. 2000년대 중반 정점을 찍고 지난 10여 년간 내리막길이던 국내 위스키 시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홈술’ 문화 확산으로 집에서 가볍게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다. 위스키 시장 소비 트렌드도 변했다. 과거에는 발렌타인, 조니워커 등 블렌디드 위스키가 시장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유흥주점에서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에 발목이 잡혔다. 반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더해 제품마다 맛과 향의 강한 개성으로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국내 위스키 시장의 부활은 2030 젊은 소비자가 주도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위스키 시장 주 고객층이 4050 남성 소비자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고 2030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한 병에 20만원이 넘는 위스키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고 설명했다.

위스키 마니아 ‘성지’ 된 남대문시장

2030 위스키 마니아에게 ‘남던’이라 불리는 남대문시장 주류상가는 ‘성지’로 통한다. 남던은 ‘남대문 던전’의 줄임말로 시장 안에서 주류상가를 찾아가는 길이 미로처럼 어렵고, 상인과의 가격흥정이 마치 게임 속 던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과 비슷해 붙은 애칭이다.

남대문시장 주류상가의 경쟁력은 가격이다. 품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다. 마진을 적게 남기고 많이 파는 박리다매 방식을 택한 점포들끼리 경쟁하며 가격을 낮추고 있어서다. 주류 도매업체가 매장을 직접 운영하며 유통 단계를 한 단계 줄인 것도 저렴한 가격 비결이다. ‘남던에는 없는 술 빼고 다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술을 구비해 놓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2030 소비자는 남대문시장에서 저렴하게 위스키를 구매하기 위해 온라인상에서 ‘남던 시세표’를 만들기도 한다. 남대문시장은 시장 특성상 정찰제가 아니다. 상인들에게 일일이 제품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해야 해 초심자들은 덤터기를 쓰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온라인상에서 자신이 구매하거나 상인들에게 문의한 가격을 모아 시세표를 만들고 있다. ‘2022년 2월 5일 글렌피딕 12년산 700mL 남대문 H상회에서 6만원에 현금으로 구매’라고 남기는 식이다.

‘남던 시세표’를 통해 젊은 층의 위스키 선호를 가늠할 수 있다. 입문용 싱글몰트 위스키로 인기가 높은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산(700mL)은 2019년 7만원대에서 지난해 9만원으로 오른 데 이어 올해는 12만원 수준까지 뛰었다. 버번 위스키 러셀리저브 싱글배럴은 2019년 7만원에서 올해는 15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주류상가에서 만난 A상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대란으로 위스키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수요는 늘어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그마저도 인기 제품은 재고가 없어 시기를 잘 맞춰 와야 구매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