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본소득은 돈 아닌 '원칙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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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가 치명적인 건
재정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유와 법치를 침해하기 때문
진정 자유를 보호하고 싶다면
사회주의 프레임 벗어나
법치의 원칙으로 바라봐야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재정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유와 법치를 침해하기 때문
진정 자유를 보호하고 싶다면
사회주의 프레임 벗어나
법치의 원칙으로 바라봐야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기본소득이란 소득 수준과 관련없이 모든 사람에게(보편성), 노동할 의지와 상관없이(무조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다. 기본소득에는 개인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런 제도가 없으면 실업·질병·사고·불황 등 경제적 불안으로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제도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지만 유감스럽게도 반대론의 핵심은 재정 문제다. 제도를 실행하는 데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재정이 뒤따른다는 게 이유다. 돈만 많으면 복지 확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식의 반대 논리는 사회주의 프레임 내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부지불식이라고 해도 좌파적 프레임에 매몰되면,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소홀히 취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유야말로 사회적 후생, 분배 정의 등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시장경제에서 개인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능력·지식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자유와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자유주의의 유서 깊은 정치적 이상이 법치 원칙이 아닌가! 기본소득이 치명적인 건 재정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유를 침해하고 법치 원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원칙의 문제’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바탕에는 국가에 모든 시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 의무를 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국토보유세’를 통해 조달할 것을 제안한다. 토지 보유 상위 10%가 조세를 부담하기 때문에 90%의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론은 조세 부담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로 기본소득을 반대한다. 이런 반대 논리도 사회주의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논리 대신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국가에 과연 그런 의무가 있는가의 문제다. 기본소득의 세계에선 납세자에게서 돈을 빼앗아 이를 분배하는 게 제일의 국가 의무다. 하지만 약탈 행위는 주체가 누구든 불의(不義)다. 약탈뿐만 아니라 폭력, 사기, 계약 위반 등 불의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호하는 게 법치로 무장된 국가의 존재 이유임에도 그런 불의를 스스로 저지르는 게 기본소득의 국가다.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는 자유와 책임의 긴밀한 상호 보완관계를 파괴한다. 시민들은 각자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 책임이 면제되면 행동 결과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고 실패로부터 학습할 동기도 소멸한다. 인간을 사회적이 아니라 방종의 인간으로 변형시키는 게 기본소득제다. 그 결과는 사회질서의 파괴다.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를 가능하게 한 규범과 시장·법질서의 상당 부분은 책임 원칙의 진화적 산물이다.
개인의 선택과 관련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사회가 공정사회라고, 시장은 기본소득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목소리의 배후에는 분배 평등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지니 계수 등을 이용한 기본소득의 분배 효과 분석도 사회주의적 프레임 내에서 반대 논리를 전개한다. 진정한 자유주의라면, 서로 다른 사람들을 똑같게 만드는 평등은 자유주의의 유서 깊은 법치 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시장소득의 분배 결과가 공정·불공정하다는 기본소득론의 도덕적 평가도 문제다. 그런 평가엔 시장은 분배하는 인격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은 수많은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현상일 뿐이다. 소득이나 재산은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개인 각자가 지닌 능력 노력 운을 통해 벌어들인 것일 뿐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재산·소득을 놓고 정의·불의를 따지는 건 유대감 나눔 공동책임으로 뭉쳐 살던 원시사회에 대한 향수다. 야만적 원시사회를 극복하고 문명화된 번영을 안겨준 건 자유·재산을 차별 없이 보호하는 법치다.
요컨대 우리가 자유를 자체 목표라고 믿고 자유를 보호할 자세가 돼 있다면 사회적 편익·비용·후생, 시장실패 등 좌파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본소득은 물론 공공정책 일반을 법치 원칙을 통해서 봐야 한다.
이런 식의 반대 논리는 사회주의 프레임 내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부지불식이라고 해도 좌파적 프레임에 매몰되면,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소홀히 취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유야말로 사회적 후생, 분배 정의 등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시장경제에서 개인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능력·지식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자유와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자유주의의 유서 깊은 정치적 이상이 법치 원칙이 아닌가! 기본소득이 치명적인 건 재정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유를 침해하고 법치 원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원칙의 문제’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바탕에는 국가에 모든 시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 의무를 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국토보유세’를 통해 조달할 것을 제안한다. 토지 보유 상위 10%가 조세를 부담하기 때문에 90%의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론은 조세 부담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로 기본소득을 반대한다. 이런 반대 논리도 사회주의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논리 대신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국가에 과연 그런 의무가 있는가의 문제다. 기본소득의 세계에선 납세자에게서 돈을 빼앗아 이를 분배하는 게 제일의 국가 의무다. 하지만 약탈 행위는 주체가 누구든 불의(不義)다. 약탈뿐만 아니라 폭력, 사기, 계약 위반 등 불의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호하는 게 법치로 무장된 국가의 존재 이유임에도 그런 불의를 스스로 저지르는 게 기본소득의 국가다.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는 자유와 책임의 긴밀한 상호 보완관계를 파괴한다. 시민들은 각자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 책임이 면제되면 행동 결과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고 실패로부터 학습할 동기도 소멸한다. 인간을 사회적이 아니라 방종의 인간으로 변형시키는 게 기본소득제다. 그 결과는 사회질서의 파괴다.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를 가능하게 한 규범과 시장·법질서의 상당 부분은 책임 원칙의 진화적 산물이다.
개인의 선택과 관련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사회가 공정사회라고, 시장은 기본소득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목소리의 배후에는 분배 평등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지니 계수 등을 이용한 기본소득의 분배 효과 분석도 사회주의적 프레임 내에서 반대 논리를 전개한다. 진정한 자유주의라면, 서로 다른 사람들을 똑같게 만드는 평등은 자유주의의 유서 깊은 법치 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시장소득의 분배 결과가 공정·불공정하다는 기본소득론의 도덕적 평가도 문제다. 그런 평가엔 시장은 분배하는 인격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은 수많은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현상일 뿐이다. 소득이나 재산은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개인 각자가 지닌 능력 노력 운을 통해 벌어들인 것일 뿐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재산·소득을 놓고 정의·불의를 따지는 건 유대감 나눔 공동책임으로 뭉쳐 살던 원시사회에 대한 향수다. 야만적 원시사회를 극복하고 문명화된 번영을 안겨준 건 자유·재산을 차별 없이 보호하는 법치다.
요컨대 우리가 자유를 자체 목표라고 믿고 자유를 보호할 자세가 돼 있다면 사회적 편익·비용·후생, 시장실패 등 좌파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본소득은 물론 공공정책 일반을 법치 원칙을 통해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