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전 다 뒤집고 가라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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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 공약(公約)을 흔히들 공약(空約)이라고 한다. 원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걸었기 때문에 빈(空)약속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잊어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세간의 자조섞인 평가도 담겨있다. 그러나 거기엔 애초 지켜서는 안되는 약속이기 때문에 안지키는 게 오히려 나라에 좋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공약이 딱 그렇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갑자기 자신이 건설 중단 또는 준공 지연시킨 원전들을 빨리 가동시킬 수 있게 점검을 서둘러달라고 지시했다. 탈원전을 뒤집고 '원전 유턴'을 선언한 것이다.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에너지 대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값비싼 신재생에너지의 비중만 늘려서는 대응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공약 자체가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비과학적 믿음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뒤집는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한국 원전은 세계 최고로 안전하다" "한국 원전은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나. 늦었지만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고집으로 해당 공기업과 민간 기업들에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안기고, 인력과 기술 등 세계 최고 원전 생태계를 망가뜨린 것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상북도에서만 탈원전 공약으로 23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런저런 피해액을 합하면 나라 전체적으로 입은 피해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정치도 나온다. 적법한 정책 시행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불법이 있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규제와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약속 역시 마찬가지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오기에 기반한 반(反) 시장적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 지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후 방향을 틀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5년전 촛불시위와 같은 상황이 없었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금은 잊혀진 구호가 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공약 역시 일찍 포기한 게 나라를 위해서나, 현 정부를 위해 잘한 일이다. 일자리 참사, 가계소득·분배 악화 같은 부작용을 갖가지 통계 분식으로 틀어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약은 아니지만 정부가 지난 2년간 고집했던 K방역을 포기한 것도 같은 경우다. 정부는 국민들과 자영업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3T(검사·추적·치료)방식 방역시스템으로 확진자 수를 관리하며 '제 자랑'하기에만 급급했다. 정작 정부는 마스크, 백신 조달 등에 번번이 실패하고서도 말이다. 셀프방역으로 돌아선 게 선거 직전 자영업자 표심을 노린 정치적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 희생만 요구하는 방역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측면에서 진작 대체됐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오늘로 딱 69일 남았다.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정책의 부작용과 오류를 인정하고 정책을 많이 뒤집었지만 아직 남은 게 많다. 예컨대 일자리만 내쫓고,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대중 굴종외교, 대미·대일 갈등외교 같은 것들 말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과 취임사 내용, 국정운영 로드맵을 통틀어 지킨 것은 딱 하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실제 그렇다. 정부도 백서를 만들고 있겠지만, 정치로부터 독립된 권력기관 개혁부터, 민주·인권 회복, 일자리 창출, 미래성장동력 확충, 저출산·고령화 대응, 주거문제 해소, 국익우선 협력외교, 재난 예방 등 핵심 공약과 정책들에 대해 할 말이 궁할 것이다.
임기말 공약과 핵심 정책들을 뒤집는 김에 친노조나 대북·대중 정책 처럼 부작용이 분명한 정책들까지 다 방향을 틀어보는게 어떤가. 택배 노조의 만행에 가까운 횡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감안했을때 지금이 출구전략을 써보기에 적기라는 것은 청와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옳은 길을 가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공약이 딱 그렇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갑자기 자신이 건설 중단 또는 준공 지연시킨 원전들을 빨리 가동시킬 수 있게 점검을 서둘러달라고 지시했다. 탈원전을 뒤집고 '원전 유턴'을 선언한 것이다.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에너지 대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값비싼 신재생에너지의 비중만 늘려서는 대응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공약 자체가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비과학적 믿음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뒤집는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한국 원전은 세계 최고로 안전하다" "한국 원전은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나. 늦었지만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고집으로 해당 공기업과 민간 기업들에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안기고, 인력과 기술 등 세계 최고 원전 생태계를 망가뜨린 것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상북도에서만 탈원전 공약으로 23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런저런 피해액을 합하면 나라 전체적으로 입은 피해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정치도 나온다. 적법한 정책 시행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불법이 있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규제와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약속 역시 마찬가지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오기에 기반한 반(反) 시장적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 지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후 방향을 틀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5년전 촛불시위와 같은 상황이 없었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금은 잊혀진 구호가 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공약 역시 일찍 포기한 게 나라를 위해서나, 현 정부를 위해 잘한 일이다. 일자리 참사, 가계소득·분배 악화 같은 부작용을 갖가지 통계 분식으로 틀어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약은 아니지만 정부가 지난 2년간 고집했던 K방역을 포기한 것도 같은 경우다. 정부는 국민들과 자영업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3T(검사·추적·치료)방식 방역시스템으로 확진자 수를 관리하며 '제 자랑'하기에만 급급했다. 정작 정부는 마스크, 백신 조달 등에 번번이 실패하고서도 말이다. 셀프방역으로 돌아선 게 선거 직전 자영업자 표심을 노린 정치적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 희생만 요구하는 방역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측면에서 진작 대체됐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오늘로 딱 69일 남았다.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정책의 부작용과 오류를 인정하고 정책을 많이 뒤집었지만 아직 남은 게 많다. 예컨대 일자리만 내쫓고,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대중 굴종외교, 대미·대일 갈등외교 같은 것들 말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과 취임사 내용, 국정운영 로드맵을 통틀어 지킨 것은 딱 하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실제 그렇다. 정부도 백서를 만들고 있겠지만, 정치로부터 독립된 권력기관 개혁부터, 민주·인권 회복, 일자리 창출, 미래성장동력 확충, 저출산·고령화 대응, 주거문제 해소, 국익우선 협력외교, 재난 예방 등 핵심 공약과 정책들에 대해 할 말이 궁할 것이다.
임기말 공약과 핵심 정책들을 뒤집는 김에 친노조나 대북·대중 정책 처럼 부작용이 분명한 정책들까지 다 방향을 틀어보는게 어떤가. 택배 노조의 만행에 가까운 횡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감안했을때 지금이 출구전략을 써보기에 적기라는 것은 청와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옳은 길을 가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