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이지스의 공간생각]
어쩌면 필자는 여의도 금융가에서 해외 부동산에 가장 많이 투자한 사람일지 모른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해외 부동산을 운용하는 이지스자산운용에서 10조원이 넘는 규모의 해외 자산 투자를 담당해 온 덕분이다.

그동안 가장 많이 접한 질문은 "왜 해외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는가"였다.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하면서 이 질문의 빈도가 줄어들었다면, 그 다음 흔한 질문은 "한국에서 과연 해외 우량 물건에 투자하는 게 가능한가"일 것이다. 누구나 개별 종목에 접근할 수 있는 주식시장과 달리 부동산은 정보의 불균형이 있는 시장이다. 따라서 현지에서 팔리지 않는 물건이 국내에 소개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세계는 넓고 투자 대상은 많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곤 한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상업용 건물의 거래량 급증으로 한국 시장의 비중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해외 시장은 훨씬 크고 다양하다. 어느 산업을 막론하고 상대적으로 협소한 내수 시장에서만 비즈니스를 영위하면 성장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대체투자도 마찬가지로 해외 시장 진출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제인 셈이다.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까다롭다. 물론 "한국에서도 해외 우량 자산에 투자 가능하다"는 점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미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실에서, 특히 선진국 시장은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경쟁의 장이 된 지 한참이다. 매도자 입장에서도 자국 투자자에게만 우량 기회를 제공할 유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지인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매입하는 것이 만만치 않긴 해도, 더 비싸거나 불리한 조건의 투자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실제 당사가 영국 런던의 빌딩을 쿠웨이트 펀드로부터 매입해 운용한 후 아제르바이잔 투자자에게 매각한 사례처럼 글로벌 시장은 이미 '초연결' 상태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인 이슈는 "어떻게 투자하고 운용하는가"에 있다. 국경 간 이동이 제한된 코로나 시국에서 겪었듯이 국내에서의 '원격운용'으로 해외 부동산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일정 부분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추가 질문에 답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의 해외투자 방향은 이러하다. 현지 파트너사에만 의존한 수동적인 접근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다. 대신에 물리적‧시간적 제약이 없는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해외 부동산 투자 및 관리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서울 본사 인력을 해외 플랫폼에 지속적으로 파견하고 현지 채용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우량 투자기회 선점을 위한 딜 소싱, 매도인 대면 협상, 운용 자산의 현지 임대차 및 가치부가(Value-add) 실행, 자산 실사 등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이슈에 대응하는 실행 전략을 펼치고자 한다.

이제 화두는 다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로 돌아가야 한다. 한때 '세계경영'을 부르짖던 게 낡은 구호일지 모르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투자 대상은 드넓은 세계에 퍼져 있는데 정작 투자운용 담당자들은 서울에 머물러 있는 모습은 더 이상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자산운용업도 제조업 못지않게 현지화가 요구된다. 이지스는 그 길로 작지만 한 걸음씩 내딛고자 한다.